[이지완의 포토詩세이]

나처럼 한치 앞도 못 보는 사람들이
실망하지 말라고,
어떤 때는 누구나 안 보인다고,
가을 아침이 깔아놓은
위로 
힘 뺀 태양이 뿌려놓은
배려

안개는 세상을 가려서 나와 내 주변을 오롯이 돌아보는 시간을 선물하기도 한다. 
안개는 세상을 가려서 나와 내 주변을 오롯이 돌아보는 시간을 선물하기도 한다. 

안개가 끼면 앞이 잘 안 보여 위험하고 답답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주위 것들이 사라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은 듯한 느낌도 든다. 이게 묘한 쾌감도 준다.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안개의 위로는 효과가 크다. 안개를 맞으며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피부에 느껴지는 감촉도 좋다. 공기 중에 떠 있는 물방울인 안개가 촉촉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건조하고 팍팍한 일상을 지내고 있다면 이 느낌이 더 좋을 것이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은 앞날의 불확실성을 뜻하는 사자성어다. 안개가 끼어 5리(2km 정도) 앞도 안 보인다면 답답할 것이다. 상황 뿐 아니라 개인의 특성을 따질 때도 시각과 지혜는 매우 밀접하다. 시야가 좁고 짧다는 건 대체로 흠이고 욕이다. 멀리, 크게 보지 못하는 근시안(近視眼)은 지혜롭지 못한 것의 비유로 쓰인다. 

천리안(千里眼)까지는 아니어도 시력과 지혜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러나 앞을 제대로 보는(판단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 코 앞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도 버겁다. 이게 바로 안개가 유용한 지점이다. 안개나 먼지 없이 화창한 날이라고 생각해 보자. 사람마다 얼마나 멀리 보는지, 누가 근시안이고 누가 천리안인지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능력이 고스란히 평가받는 환경이다. 그러나 안개 낀 날이라면?

내가 가진 부족하고 유한한 능력이 가려진다는 건 은근히 다행이다. 특히 도마 위에 올려져 사람 값이 평가되는 현대사회에서 짙은 안개는 자연이 사람에게 주는 배려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떠오르는 태양이 볕을 쏘면 물방울들은 곧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그 잠깐의 고립이 각박하고 건조하고 치열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면, 적어도 내 무능을 탓하거나 자격지심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면, 온전히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면 고마운 일이다. 

* 카카오톡 오픈채팅 '이지완_시인(참)칭관찰자시점'에서 더 많은 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