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대전평생교육진흥원 북토크 프로그램으로 예정됐던 도서들. 이념 편향적이라는 일부 민원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북토크 행사가 취소됐다. 출판사 제공.
대전평생교육진흥원 북토크 프로그램으로 예정됐던 도서들. 이념 편향적이라는 일부 민원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북토크 행사가 취소됐다. 출판사 제공.

대전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 대한민국의 과학수도, 첨단을 달리는 도시임을 자처하면서 행정은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러있다. 지역을 가르고, 시민을 분열시키고,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이념 논쟁에 선을 긋기는커녕 동참하기까지 한 이번 북토크 취소 사태가 그 예다.

대전평생교육진흥원 북토크 프로그램 강연자들이 편향된 이념을 가졌다는 이유로 시민과의 만남 기회를 잃었다. “좌파 이념의 책, 좌파 성향의 발표자”, “중립적이지 않은 강연” 등의 내용이 담긴 민원이 접수됐고, 이를 수용해 최종적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취소키로 했다는 것이 시와 진흥원의 입장이다. 어떤 강연자는 강연 하루 전 행사 취소를 통보받았고, 사전 신청자들도 예정된 발길을 돌려야했다.

강연자들은 기후위기와 채식에 관한 책, 원전 문제를 다룬 자신의 소설, 자수성가한 미국의 젊은 사업가 J.D. 밴스의 삶을 다룬 번역본을 주제로 시민들과 만날 예정이었다.

공공기관이 기후위기와 에너지 자립 등 현 시대의 의제들을 좌우 잣대로 규정짓는 동안, 강연자들은 정당을 가진 정치인이었다는 이유로, 지역의 원전 문제를 다룬 소설을 썼다는 이유 등으로 뜬금없이 ‘좌파 작가(강연자)’로 낙인찍혔다.  

행정 신뢰 하락으로 인한 후폭풍은 고스란히 시민 몫이다. 앞으로 이념에 의해 창작물을 재단하는 시대착오적 행정을 기꺼이 감안하고 대전시민들을 만나고자 하는 작가와 강연자들이 있을지도 우려스럽다.  

지난달 전국민적 웃음거리가 된 문화체육관광부의 ‘윤석열차’ 풍자만화 사건 이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박근혜 전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잔상이 지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또다른 형태의 검열을 목도하고 있다.

갈등공화국 오명, 정치와 행정의 책무

대한민국은 심각한 갈등사회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5월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집단별 갈등 인식' 조사에서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현안은 ‘이념 갈등’으로 분석됐다. 여·야 갈등과 진보·보수 갈등이 크다는 응답이 각각 95%, 94%를 웃돌았다. 모두 지난해 대비 6~7%p 상승했고, 조사를 시작한 201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뉴스1이 빅데이터 분석업체 타파크로스(Tapacross)에 의뢰해 언론 기사와 소셜미디어(SNS)에서 2018년 이후 언급된 갈등관련 데이터를 추출, 이를 지수화한 결과, 올해 1분기 한국사회 종합갈등 지수는 누적기준 197.2로 2018년(100)과 비교해 2배 가까이 높아졌다. 전체 갈등 언급량 중 진영갈등 관련 언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64%로 가장 많았다.  

정치와 행정은 오랜 시간 편을 가르고, 반목해왔다. 시대의 화두는 포용과 다양성으로 바뀌었다지만, 정작 책임있는 자들은 중립과 균형을 핑계삼아 여전히 책무를 외면하는 중이다. 

통제불능의 갈등공화국 안에서 시민을 통합하고 갈등을 조정해야 할 중재 주체는 어디에 있나. 우리는 여전히 검열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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