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마흔여섯번째 이야기] ‘초연결’ 사회의 역설

카카오와 SPC 기업 이미지. 출처: 양사 홈페이지.
카카오와 SPC 기업 로고. 출처: 양사 홈페이지.

지난 16일 벌어진 카카오 먹통 사태는 ‘IT 강국’을 자부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드러냈다. 채팅부터 교통·금융·물류·유통은 물론, 의료·치안 등 공공서비스까지 멈췄다. 온 나라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비 상태에 직면했다. 동시에 전 국민은 ‘독점 기업’ 위력을 체감했다. 

카카오는 그동안 서버 장애 등 시스템에 잦은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설비 투자는 게을렀고, 사업 확장에만 부지런했다. 카카오 부사장의 “화재는 예상 못한 시나리오”라는 해명은 “그동안은 무슨 시나리오를 준비했나”라고 반문하게 만든다. 

카카오 사태 하루 전. 국내 제빵업계 1위 SPC 계열사 공장에서 일하던 청년 노동자가 사망했다. 소스 배합 기계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2인 1조 작업은 ‘허울’에 불과했고, 안전 보호장치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놀라운 건, 사고 당일에도, 그다음 날에도 배합기가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독과점과 이윤추구에 매몰된 민간기업 행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능력과 노력으로 얻은 ‘공정경쟁’의 산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카카오 사태와 제빵공장 청년의 죽음에서 보듯 ‘위험사회’로 진입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할까.

대기업과 원청업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을 ‘목숨과도 같은 법’으로 인식하며 가동하고 있을까. 묻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자꾸만 벌어지고 있다. 불과 열흘도 안 지난 두 사건은 여야 대치 국면에 묻히는 분위기다. 

정치권과 정부는 ‘공정경쟁’과 ‘위험사회’ 사이에서 무얼 하고 있나. 때마다 현장을 찾고, 법 제도 정비와 대책 마련을 목청껏 외치지만 늘 ‘뒷북’이다. 플랫폼 공룡 기업 규제는 이미 20대 국회 때부터 제기됐고, 중대재해법은 그야말로 구멍이 뻥 뚫린 그물망이다. 정책 입안부터 적용까지 하세월이고, 그조차 허점투성인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월 27일 법무부 업무 보고에서 “기업 활동을 위축하는 과도한 형벌 규정을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중대재해법이 기업인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메시지를 주는 법이라고 했다. 이러니 거대 기업들은 “대통령이 저러는데, 설마 처벌받겠어”하며 법과 노동자를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 

윤 대통령은 카카오 사태가 벌어지자 “민간기업이지만, 국가 기간시설”이라고 국가의 개입을 시사했다. 앞서 지시나 발언과 모순된다. 제빵공장 사고에는 유족에게 애도를 표하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지시했다. 한 달 전, 대전 현대아웃렛 화재참사로 노동자들이 숨졌을 때도 그랬다.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저서 『공정 이후의 세계』를 통해 ‘변혁 정의 운동’을 주창했다. “법이 내가 처한 현실을 보지 못할 때, 법과 제도가 우리를 보호하지 않을 때, 우리가 살고 싶은 세계를 우리 스스로 구현하려는 운동이 바로 변혁 정의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카카오 서비스 장애 피해자들은 집단소송을 추진 중이고, 온라인에서는 SPC 제품 불매 운동이 번지고 있다. 이 ‘변혁 정의 운동’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진 지켜볼 일이다. 그래도 이런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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