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열두줄인문학]

김충남 강사.
김충남 강사.

나는 어떤 형(形)의 인간인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최선형의 인간인가?’‘한번 시작한 일은 꾸준히 하는 꾸준형의 인간인가?’

‘최선’과‘꾸준히’는 모두 정성을 다한다는 뜻으로서 성공자가 지녀야 할 필수 덕목이지요. 성공을 하려면 이 두 가지 모두를 실천해야 하는데 두 가지 모두가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입니다.

‘최선’과‘꾸준히’의 덕목 중 어느 것이 더 실천하기 어려울까. 그리고 어디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할까하는 겁니다.

▲ 최선 그리고 꾸준히

같은 운동을 하더라고 운동선수는 경기에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건강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하게되지요. 수험생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평생 공부를 하려는 사람은 꾸준히 하게되지요.

이처럼 일의 성격이나 목적에 따라 그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답일 수 있고 또 오랫동안 꾸준히가 답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울 살아감에 있어서나 일에 있어서 꾸준히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답 아니겠습니까?

▲ 최선인가 꾸준히인가

운동선수가 경기에 이기기 위해서, 수험생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함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건강관리를 평생 꾸준히 하는 것, 자기계발을 평생 꾸준히 하는 것, 이러한 것은 꼭 해야겠다는 자발적 의지가 없으면 실천하기 힘들지요.

‘최선을 다했을 때’와‘꾸준히 했을 때’나타나는 효과도 차이가 있지요. 운동선수가 최선을 다하면 곧바로 이기는 효과가 나타나고, 수험생이 최선을 다하면 바로 합격의 효과가 나타나듯이 최선의 결과는 곧바로 가시적으로 나타나지요. 그러나 꾸준히 해야 하는 건강관리나 자기계발의 결과는 오랫동안 끈기와 인내로서 기다려야 하지요.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내와 끈기로서 꾸준히 하기란 쉽지가 않지요. 이렇게 볼 때 꾸준히가 최선보다 더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이요 한 수위 덕목이라 하겠습니다.

최선은 꼭 이루어야겠다는 욕망이 원동력이 됨이요 꾸준히는 끝까지 해야겠다는 의지력이 원동력이 된다 하겠습니다.

▲ 부진런함인가? 꾸준히 인가?

성실은 동양에서 아주 중요한 윤리 덕목으로 삼기에 학교교훈이나 회사사훈에 빠지지 않음을 알 수 있지요.

성실하다는 것은 정성과 진심을 다하는 것인데 무슨일 이든지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이익이 될 때만 정성과 진심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 관계없이 언제나 꾸준히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성실의 극치는 꾸준함입니다.

중용에서는 지성무식(至誠無息),지극한 성실함은 어떤 일이던지 끊임없이 쉬지 않고 하는것이라 했습니다.

바위를 뚫는 것은 엄청난 힘의 폭포수가 아니라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 한 방울인 것처럼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지닌 사람도 성실한 사람 즉 꾸준히 하는 사람 앞에는 못 당하죠. 달리기의 달인인 토끼지만 느림보 거북이의 성실함 즉 꾸준함을 이기지 못했잖아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성실함 즉 꾸준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재능은 발휘되지 못한다 했습니다. 그래서 성실하지 않은 천재가 성공한 예는 없지요.

조선 시대 김득신은 당시에 소문난 둔재였지만 한 권의 책을 백번 천 번 읽는 꾸준함으로 둔재를 극복하고 조선 시대 문장가가 되었고 신동으로 알려졌던 권유의 아들 권호와 조카인 권민은 당시 글의 천재라는 이름만 있었을 뿐 그 후에 문장가로서의 이름이 없었으니 성실함 즉 꾸준함이 없는 천재가 성공하지 못함을 증명한 예가 아니겠습니까?

근면한 사람은 대체로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은 꾸준하지요. 그런데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성실한 것은 아니고, 부지런하다고 해서 반드시 꾸준한 것을 아니죠.성실함과 꾸준히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죠. 따라서 부지런함보다 꾸준함이 더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이요. 한 수 위 덕목이라 하겠습니다.

▲ 그렇습니다. 재주가 모자라고 능력이 모자람을 탓하기 전에 꾸준히 하는 나의 성실함이 모자라지 않는지를 탓해 보았으면 합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