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완의 포토詩세이]

서쪽 하늘로 
해 진다
너 잃고 내 맘 
해진다

아름다움에 정답이 사라진 이후로 우리 모두는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아름다움에 정답이 사라진 이후로 우리 모두는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가장 오래된 형용사는 '아름답다'라고 생각한다(증명할 길이 없으니 주장만 할 뿐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은 보편적이다. A라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끼는데 B가 역겹다고 느끼는 일은 거의 없다. 인간의 타고난 천성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인간이 만들어 내거나 표현하는 아름다움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떤 미술 작품을 보고 C는 아름답다고 느끼는데 D는 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방식도 제각각이다. 음악가는 음과 박, 시인은 언어와 운율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화가는 색과 형태로, 무용수는 몸짓으로 미(美)를 드러낸다.

고대인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은 천상의 세계인 이데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은 그 이데아를 모방한 것이고, 인간이 표현하는 아름다움은 자연을 모방한 것이므로(모방의 모방)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괜찮은 예술은 아름다운 자연을 잘 묘사하는 정도였던 셈이다. 근대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의 내면 자체에도 아름다움이 있고 그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드러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증강된 미의식의 주관성은 각자의 독창성을 키워주었다. 정답이 없다는 의식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길을 열어준 것이다. 서쪽 하늘에 펼쳐진 노을을 보며 나도 그 주관성에 기대어 지껄여 본다. 아름다움은 슬플 때 절정값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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