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열다섯번째 이야기] 길을 잘못 들었다면 돌아가야

1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현판식 모습.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1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현판식 모습.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여성가족부 폐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페이스북에 한 공약이다. 밑도 끝도 없이 올린 이 공약은 대선 기간 내내 뜨거운 이슈였다. 윤 당선인은 지난 13일 “여가부는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며 폐지 강행을 시사했다. 

여성들은 공분했다. 성별 갈라치기로 남녀 갈등을 심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 당선인 임기 동안 ‘출산 보이콧’에 나서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당선인 측은 고민에 빠졌다. 공약했으니 추진은 해야겠는데,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여성’이라는 두 글자를 넣어야 할지, 빼야 할지 진퇴양난이 따로 없다. 

여가부 폐지가 자칫 대선 승리에 공을 세운 ‘이대남’의 전리품처럼 비쳐선 안 될 일이다. ‘김지영들’이 5년 내내 한숨 짓는 나라를 만들지 않으려면.

윤 당선인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폐지’도 선언했다. 그 역시 대선 공약 중 하나였다. 폐지 이유 중 하나가 ‘국민 신상 털기’ 때문이라는데, 청와대는 “지금 정부에서 하지 않은 일을 민정수석실 폐지 근거로 삼는 건 적절치 않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박근혜 정부 우병우, 문재인 정부 조국이 대표적 민정수석이었다. 두 사람 모두 권부의 핵심이었지만, 말로(末路)는 비참했다. 그렇다고 ‘민정수석실’을 탓할 수 있나. 여가부와 민정수석실을 폐지하면 만사가 해결될까. 없애더라도 그걸 대신할 부처와 조직은 필요하다. ‘제2의 여가부’와 ‘민정수석실’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 이전도 같은 이치다. 청와대를 옮기면 제왕적 권력 잔재가 청산되나. 대통령이 제왕적이고, 권위적인데. 수백억 이전 비용은 소상공인·자영업자에 주는 게 차라리 낫다.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에 보태던지.

이들 공약은 선거 공학적 의도가 다분했다. 당선인 신분이라면 달라야 한다. ‘통합’을 하겠다면 ‘닥치고 폐지’보다, 고치고 다듬어 새롭게 탈바꿈할 궁리가 먼저다. 

정권을 교체하고 보니 뭔가 ‘티’를 내고 싶은 당선인과 인수위 마음은 모를 바 아니다. 대신, 그 과정에 국민적 혼란과 갈등의 여지를 둬선 안 될 것이다. ‘48%의 국민’만 데리고 가겠다는 ‘고집불통’이 아니라면. 

사회적 합의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공론화 과정을 거쳤을 때 비로소 타협의 공간이 생긴다. 당장 눈앞의 나무만 볼 게 아니다. 대통령 임기 5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면 돌아가는 게 낫다. 막무가내로 가다간 넘어지기 십상이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통합의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그는 “우리는 국민을 통합해야 한다. 나는 국민들이 그들의 봉사를 받을 권리를 박탈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인수위가 18일 사무실 현판을 내걸었다. 어떻게 하면 새 정부가 국민에 봉사할지 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당선인에 조언하는 게 소임이다. 미련한 자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조언을 듣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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