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우주청 입지 논란...대전 정치권에 보내는 세 가지 제언

대전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지난 20일 오전 대전시청 앞에 모여 항공우주청 대전입지를 주장하고 있다. 자료사진.
대전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지난 20일 오전 대전시청 앞에 모여 항공우주청 대전입지를 주장하고 있다. 자료사진.

실패 자체는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실패했다는 것은 일단 시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실패만 되풀이해서 성공할 수 없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실패학의 주창자인 일본 하타무라 요타로 도쿄대 명예교수는 “실패학이란 실패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배우는 학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실패에 대해 연구함으로써 집단의 지혜를 얻자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즉 실패는 도전할 때 반드시 겪어야 할 필연적 성장과정이지만, 알면서도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은 안 되기 때문에 실패를 활용해서 집단지성의 힘을 키우자는 것이 실패학의 본질이다.

2022년 대선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항공우주청 유치 공약을 놓고 여야가 연일 공방을 벌이고 있다. 대전은 작년 10월 발사한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미완의 성공을 거두는데 있어서 주된 역할을 맡은 항공우주연구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 외에도 국방과학연구소, ETRI, KAIST, 그리고 40여개의 관련 민간기업 등 국내 최고의 항공우주 클러스터가 조성된 과학도시로서 항공우주청이 당연히 대전으로 유치되길 기대한다.

그러나 대선후보와 정당들이 지역별로 쏟아내는 선심성 공약에 유치후보 지역으로 경남 사천, 진해와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전남 고흥이 포함되면서 향후 치열한 정치쟁점화는 물론 차기정부에서 유치경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전은 국책사업이나 정부기관 유치경쟁을 벌일 때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대전은 한강 이남에서 제일 살기 좋고 또 오고 싶은 도시로 명성이 드높았다.

1905년 경부선이 대전역을 통과하면서 얻은 교통도시 간판 덕에 1932년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이 이전했으며, 1970년대 대덕연구단지와 수자원공사가 대전에 입지했다. 과학도시의 브랜드까지 추가한 1990년대에는 대전EXPO, 자운대 그리고 정부대전청사까지 대전에 들어서게 된다. 타시도의 부러움과 질투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대전으로의 기관유입과 대규모 국책사업 유치는 실패를 몰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기까지였다.

2007년을 넘어서면서 시련이 시작된다. 승승장구하던 대전이 당시 유치경쟁이 치열했던 자기부상열차, 로봇랜드, 첨단의료복합단지 등의 국책사업들을 다 놓치게 된다. 2012년부터 대전은 혼돈과 충격에 빠진다. 충남도청이 80년 만에 아무 대안도 없이 대전을 떠났으며 KTX 호남역은 속절없이 붕괴된다. 게다가 세종시가 출범하면서 대전과 더불어 발전하리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된다.

최근 문재인 정권하에 집권당에 대전시장과 구청장은 물론 국회의원 전원을 선출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중소벤처기업부를 세종에 빼앗기는가 하면 K-바이로랩허브까지 인천으로 내준 결과는 시민들에게 당혹감을 넘어 참담함을 안겨주었다.

대전은 그제서야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도시침체와 인구감소를 비로소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성장과 성공에만 익숙해있던 대전은 처음으로 맞이한 도시침체와 유치실패에 우왕좌왕하고 만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종전의 실패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그 원인을 찾는 치밀한 성찰은 지금까지도 미뤄진 채 당장 발등에 떨어진 유치경쟁에 또다시 뛰어드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다.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이 있어 임진왜란 같은 참화를 되풀이 당하지 않으려는 후대의 성찰이 가능했듯이 지금이라도 실패학을 펼쳐놓고 대전의 국책사업과 기관유치의 실패사례들 속에 숨어있는 교훈을 찾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준비와 노력을 촉구하고자 한다.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 디트뉴스 자문위원.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 디트뉴스 자문위원.

첫째, 국책사업이나 기관이 대전을 외면하는 근본적인 요인은 대전의 미래도시경쟁력이 월등한 비교우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대전으로의 유치는 고사하고 대전에 둥지를 튼 공공기관이나 심지어 향토기업 마저 대전의 탈출러시에 동참하는 현상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대전이 자랑해온 교통도시의 위상이 실추되고 있는 사이 도시경쟁력은 지켜지지 못했다.

게다가 대전의 상징인 대덕연구단지가 타 지역으로의 분원설치와 연구원들의 사기저하로 과학도시의 명성을 잃는 동안 대전의 미래경쟁력은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는데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희망은 있다. 대전의 미래경쟁력이 당장 높아지지 않는다면 메가시티 조성을 통한 대전도시권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이 대안이다. 우주청 유치의 성공도 대전·충청권이 힘을 합해야 가능한 일이다

둘째, 대전 정치권의 결집과 리더십 문제다. 중기부가 세종에 느닷없이 이전하거나 당연히 유치되었어야 할 K-바이로랩허브를 인천에 빼앗긴 결과를 보면 현실적 정치논리가 작동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전의 시민들은 그동안 지역 정치적으로 여야 균형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아니면 야당 또는 여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주면서 지역차별과 홀대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했으나 헛수고였다. 심지어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배출했어도 큰 효과는 없었다. 한국정치가 영남과 호남으로 경도되어 온 특징을 외면하지는 못하지만 대전정치권과 정치인들의 리더십 책임도 크다.

대전은 여야를 가를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전발전사업이나 국책사업 유치시 여야 정치인이 함께 팔을 걷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대전출신 국회의장을 비롯한 현역 국회의원들이 여당 내 핵심적 의사결정과정에서 대전을 위해 열 내고 애쓰는 뉴스도 별로 보지 못했다.

이번 우주청 대전설립도 차기정부에서 대전출신 국회의원들이 한 목소리로 나서서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이참에 대전 여야정치인을 포함한 ‘민관정 협의체’ 구성을 상설화해서 공동대처할 것을 제안한다.

셋째, 국책사업과 기관 유치에서 실질적인 역할과 실무를 담당하는 곳은 행정기관 즉 대전시정이다. 그동안 대전시장들과 대전시는 국책사업을 유치할 때마다 대전의 대덕연구단지 중심의 기존인프라 활용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 기관과 사업유치에 필요한 공간과 재정 및 시정의 뒷받침에 대한 적극적이고 획기적인 장·중·단기 계획을 내놓지 못해왔다.

우주청의 경우도 대전이 국내 최고의 항공우주산업 클러스터가 조성된 과학도시라는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홍보만 하고 있다. 반면에 경남은 우주산업클러스터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우주산업 기반조성을 위해 450여억 원의 예산을 이미 투입하고 있는 등 행정역량을 총집결하고 있다. 대전시정이 바뀌지 않으면 불리하다. 이제라도 대전시는 실패학이 보여주는 다음의 핵심 노하우를 참고해서 우주청 유치경쟁에 철저히 대비하기 바란다.

- 지금까지의 실패를 직시하고 잘못을 인정하라.

- 실패발표회를 갖고 실패경험을 활용해라.

- 책임추궁과 원인규명을 확실히 구분하라.

- 실패를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라.

- 눈앞의 현상만 보지말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라.

- 원인을 찾았다면 적극 반영하고 개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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