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권의 '야구에 산다!'] 전성시대 활짝 열린 전설의 92학번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지만 1992학번들, 즉 1973년생들은 한화이글스나 프로야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 선수들이 많다.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지만 1992학번들, 즉 1973년생들은 한화이글스나 프로야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 선수들이 많다.

2022시즌을 향한 시계추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2022년 4월 2일 개막을 확정했고 각 팀은 동계 전지훈련 준비에 여념이 없다.

선수들은 연봉 계약을 통해 다가올 시즌에 대한 동기 부여를, 구단은 선수단 구성을 마무리하고 올 시즌에 대한 준비에 빈틈이 없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토브리그에 각 구단과 선수들은 바쁜 시간을 보낸다. 우선, 시즌 중에 하지 못했던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비시즌 즉, 이 기간에 결혼식이 많은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스타급 선수들은 방송 출연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확대하고 미디어 노출을 통해 야구의 인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도 기울인다. 젊은 선수들이나 연차가 낮은 선수들은 단체 훈련을 할 수 없는 시기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홈구장에 나가 훈련을 하기도 하고 선배 선수들과 함께 팀을 구성해 선배 선수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2022시즌을 향한 준비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가올 2022시즌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그 종목에 특화되어 소위 말하는 “잘”하는 선수들이 유난히 많이 나오는 해가 있다. 현재 프로야구에서는 이런 “세대”가 3-4개 존재한다. 3-4개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프로야구에서의 “잘”하는 세대를 3개로 구분한다. 그 첫 번째 세대는 오늘 이야기를 펼칠 “전설의 92학번”, 두 번째는 “2000년 세계청소년야구대회 우승” 세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6년 프로 입단” 세대이다.

첫 번째 세대의 선두주자는 박찬호, 두 번째 세대의 선두주자는 추신수, 세 번째 세대의 선두주자는 류현진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메이저리거 출신이거나 현역 메이저리거이다. 이렇게 대표 선수들을 이야기하면 많은 야구팬이 이 선수들 외의 나머지 선수들에 대해서 거침없이 의견을 나눌 것이다. 그 정도로 이 세대의 선수들은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여기에 하나 더 포함을 시키자면 “2008년 세계청소년야구대회 우승” 세대를 논하기도 한다. 선두주자보다는 대표 선수들이 바로 허경민, 안치홍, 김상수, 박건우, 정수빈으로 이어지는 현재 리그를 대표하는 중심 선수들이다.

이제는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각 계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전설의 92학번” 출신 선수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머지 세대들은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을 하고 있기에 다음 기회에 다루면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워낙 많은 선수가 활약한 세대이기 때문에 경력이나 에피소드를 다 열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임팩트가 컸거나 현재 야구계에서 좋은 역할을 해주고 있는 선수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아쉽지만 한화이글스와의 인연이 있는 선수들은 2편에서 자세하게 조명해보기로 하자.

전성시대 활짝 연 전설의 92학번

전설의 92학번은 소위 말해서 1973년생으로 1992년 대학에 입학한 선수들을 일컫는다. 물론, 부상이나 기타 이유로 인해서 유급이라는 제도 속에 1972년생도, 우리만이 갖는 “빠른 생일” 문화로 인해 1974년생도 있다. 하지만 기준은 대학 입학 연도 기준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입단한 선수는 1992년에, 대학을 졸업한 선수는 1996년에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들은 현재 프로야구 뿐 아니라 야구계 전반에 중심축이 되고 있다. 그만큼 이 세대의 선수들이 야구도 “잘”했을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삶에 있어서도 본인들의 역량을 “잘” 발휘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1992년은 프로야구가 시작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올해가 40주년이니까 벌써 30년 전 이야기가 된다. 1973년에 태어난 이 세대들은 프로야구가 시작된 1982년에 10살의 나이가 된다. 즉, 초등학교 시절에 탄생한 프로야구를 보면서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을 가능성이 크다.

축구계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보고 자란 세대라고 하는 기성용, 구자철 등은 10년 뒤인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역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한다. 한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신화를 보고 야구에 뛰어든 어린 선수들은 10년 뒤에 프로야구를 주름잡는 선수들로 성장해 있다. 대표적인 선수들이 이정후와 강백호를 들 수 있겠다.

이렇듯, 하나의 기념비적인 큰 이벤트를 시작으로 그 종목에 우수한 선수들이 몰리기 시작하는 현상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1982년 프로야구의 시작은 어린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프로야구가 시작되었지만, 이 시기만 하더라도 각 지역의 고등학교 야구부에는 지역의 관심이 많이 쏠리곤 했다. 이 당시 지역별로 소위 야구 “잘”하는 선수들이 전국에서 자웅을 겨루고자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다.

서울권에서는 신일고의 조성민과 설종진, 휘문고의 임선동, 경기고의 손경수가 대표적이었고 인천권에는 인천고의 최원호와 정경배, 강원권에서는 원주고의 안병원, 전라권에서는 광주일고의 박재홍과 김종국, 충청권에선 공주고의 박찬호, 홍원기, 손혁, 대전고의 정민철, 경상권에서는 경남상고의 차명주와 곽재성, 부산고의 염종석, 대구상고의 전병호, 대구고의 이동수 등이 있었다.

이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1년 한, 미, 일 청소년 야구 대회를 위한 대표팀 명단을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이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투수에 임선동, 차명주, 박재홍, 조성민, 박찬호가 내야수에 김종국이, 외야수에 설종진, 곽재성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들 외에 이때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은 그 당시에 해당 포지션에서 “잘”하던 선수들이었으나 그 이후에 부상이나 기타 이유로 더이상 성장하지 못한 선수들도 있었다.

우선, 이 당시 소위 말하는 최대어는 “빅 3”였다. 휘문고의 임선동, 신일고의 조성민, 경기고의 손경수. 이들은 모두 우완 정통파로 150km/h에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임선동은 “풍운아”였다. 당시 LG에 1차 지명을 받았으나 연세대 진학을 택했고 졸업 무렵에는 일본 다이에, 지명권이 있던 LG, 실업팀 현대피닉스와의 계약 파동이 일어나면서 결국 LG에 입단했다가 프로에 뛰어든 현대로 트레이드되면서 짧은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모교 연세대 코치를 거쳐 진영고등학교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신일고의 조성민은 일찍 해외 진출을 선언하면서 고려대에 입학했고 졸업과 동시에 일본 요미우리에 입단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부상 때문에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가진 못했지만 톱탤런트 최진실과의 결혼과 이혼으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계에서의 성공은 이루지 못한 채 “하늘의 별”이 되었다.

손경수는 OB(현 두산)에 1차 지명을 받고 홍익대에 진학했으나 2년 후 가정사로 인해 OB에 입단을 타진했으나 불협화음에 휩싸이며 쉽지 않은 행보를 겪었고 프로에 와서 지병인 간염으로 인해 제대로 된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결국, 손경수도 건강 문제로 인해 “하늘의 별”이 되었다.

이렇게 “빅 3”는 그 당시 유명세에 비해 좋은 경력을 남기지는 못하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임선동만이 짧고 강한 임팩트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조성민과 손경수의 비보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들과 함께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렸던 광주일고의 박재홍과 김종국은 각각 연세대와 고려대로 진학한다. 박재홍은 졸업 당시 임선동, 손경수와 마찬가지로 해태에 1차 지명을 받았으나 대학을 선택하고 1996년 졸업 당시 실업팀 입단을 선택하면서 해태를 “속앓이”하게 만들었다. 이후, 호타준족의 선수로 프로야구계에 큰 업적을 남긴 채 지금은 해설위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에 반해, 김종국은 고려대를 졸업한 1996년에 해태에 1차 지명을 받으며 입단 후 프랜차이즈 선수로 입지를 다졌고 코치를 거쳐 2022시즌을 앞두고 기아타이거즈의 감독에 선임되면서 자신의 야구 철학을 펼쳐 보이게 됐다.

한편, 김종국 감독이 선임되기 전 기아타이거즈 단장으로 임명된 장정석은 덕수상고와 중앙대를 졸업한 92학번으로 프로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키움 감독과 해설위원을 거쳐 한 팀의 운영을 책임지는 단장으로 그의 성공적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한화이글스의 마지막 우승은 1999년이다. 2000년대에는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화보다 더 우승을 오랫동안 하지 못한 구단이 있다. 바로 롯데자이언츠이다. 롯데는 지난 1992년이 마지막 우승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한국시리즈 상대는 한화이글스의 전신 빙그레이글스였다. 빙그레이글스의 우승을 막아선 투수가 바로 롯데의 염종석이었다.

부산고 출신의 염종석은 1992년 신인이었다. 바로 “전설의 92학번”이다. 부산고를 갓 졸업한 염종석은 그 해 무려 17승을 거두었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최강 빙그레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해 신인왕과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성남고의 내야수 박종호는 1992년 LG에 고졸 우선 지명으로 입단했다. 2년 차 시즌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입지를 다졌고 무엇보다 김용달 코치의 조언으로 “스위치히터”로 변신하면서 공, 수에서 재능을 뽐냈다. 1994년 LG의 우승을, 현대로 이적해서는 박진만과 환상의 키스톤 콤비를 자랑하면서 세 번의 우승을, 삼성에서도 두 번의 우승을 더 하면서 총 6개의 우승 반지를 갖게 되며 그의 커리어를 빛나게 했다. 39경기 연속 안타 신기록과 “스위치히터” 최초의 타격왕 타이틀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이 밖에도 대구고를 졸업한 이동수는 1992년 삼성 고졸 우선 지명으로 입단 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입단 4년 차인 1995년에 타격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지금은 신인이 아닌 연차가 쌓인 신인왕들이 많이 생겼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이런 사례가 없었기에 “중고신인 신인왕”이라는 타이틀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수비에서의 아쉬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여러 팀을 옮겨 다니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여기에 대구상고와 영남대를 졸업하고 1996년 삼성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전병호는 “흑마구”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타자들을 요리했던 좌완 투수로 한때 삼성의 주축 투수로 활약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원주고의 안병원은 강원도의 힘으로 불리며 묵직한 공을 뿌린 우완 투수로 1992년 태평양에 입단해 고졸 신인으로 10승을 거두었으나 염종석과 정민철에 밀리면서 큰 이슈를 남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현대에서 주축 투수로 자리매김에 성공했고 1999시즌을 앞두고 LG로 트레이드되었는데, 그때 상대로 바로 동기 임선동이었다.

한편, 앞서 언급한 청소년대표팀 신일고의 설종진. 설종진은 조성민과 신일고를 정상권으로 이끌었던 투, 타에서 모두 능했던 선수로 중앙대에 입학해 뜻하지 않은 화상과 고질적인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화려한 선수 생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키움의 퓨처스인 고양의 감독으로 후진 양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역시 청소년대표를 거친 경남상고 곽재성. 이 선수는 입단 동기인 부산고 염종석(1992년 신인왕, 골든글러브 수상)보다 고등학교 시절의 성적도 좋았고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입단했으나 이런저런 구설수에 휘 말리고 좋지 않은 일에 엮이면서 아쉽게 선수 생활을 빠르게 접게 되었다.

이렇듯, “전설의 92학번”에 야구를 “잘”했던 선수가 많았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 중 야구계에 족적을 남긴 선수도 있으나 자신이 가진 기량을 마음껏 펼쳐 보이지 못한 선수도 있었다.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력이 제일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주변 상황이나 뜻하지 않은 돌발 변수들이 없어야 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정권 대전MBC 프로야구 해설위원(이학박사).
여정권 대전MBC 프로야구 해설위원(이학박사).

다음 편 글에서는 “한화이글스와 인연을 맺은 92학번 선수들”을 만나보기로 하자. 의외로 한화이글스와 인연을 맺은 92학번 선수들이 많다는 것에 놀라움과 기대감이 생긴다.

아쉽게 2년 연속 최하위로 2021시즌을 마감한 한화이글스 선수들. 스프링캠프를 통해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의 시즌2 2022시즌에는 많은 성장을 이뤄내며 많은 팬의 기대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선수단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반드시 “최약체”라는 오명을 벗고 내년 시즌에는 “반전의 반전”을 만들어서 화려하게 비상(飛上)하는 독수리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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