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힐링에세이]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직장생활’이란 단어 앞에 ‘슬기로운’ 단어를 덧붙여본다. ‘슬기로운 직장생활’이 희망고문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슬기롭다’는 어떤 일을 잘 판단하고, 잘 해결해 내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의 삶도 존중하면서 자신 돌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느낌까지도 전달한다. ‘슬기로운 직장생활’은 최근에 본 ‘슬기로운 의사생활’드라마에서 모방을 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 슬기로운 문화생활, 슬기로운 산촌생활, 슬기로운 외식생활 등 다양하다. 

우리에게 ‘직장’이란 곳이 무엇일까? 집이나 가족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많은 시간과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는 곳이니 어쩌면 집이나 가족보다 더 친밀한 곳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마지못해 머물러 있어야 하는 곳으로 피하고 싶은 곳, 도망가고 싶은 곳일 수도 있다. 각 개인의 마음가짐에도 차이가 있겠지만, 각 직장의 사장(오너) 마인드에 따라 차이는 엄청 크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직장이 있고, 그저 기본만 셋팅된 로봇처럼 오롯이 그것만 일하고 퇴근하는 피상적인 직장이 있다.자신의 능력이 기본이상이라면 직장 내에서의 인정욕구는 높을 수 있다. 즉 자신의 역할분담 이상의 일을 해결해 나가는 능력이 많다는 것이다. 많은 일을 하면서 힘들다, 버겁다고 말하면서도 직원들이 자신에게 의존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인정욕구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인정욕구는 그곳이 가정, 회사, 학교, 모임, 단체 등 어디든 상관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들어난다. 이러한 인정욕구는 자신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는 감정조절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혀 상관없는 장소나 사람에게 분노가 폭발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게 된다. 자신이 쏟았던 그 열정과 시간 그리고 심리적인 부분까지도 허망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직장생활’이 참 무색하다. 어쩌면 그 ‘슬기로움’은 남의 일 같다. 직장생활을 하는 목적이 각기 다르다. 생계를 위함인지, 자아실현을 위함인지, 승진을 위함인지, 자기 개발을 위함인지, 직장동료들의 태움(텃새)에 따라 ‘직장’이란 곳은 천국과 지옥의 형태로 바뀐다. 어떤 형태를 불문하고 우리는 슬기롭고 지혜롭고 잘 살아내는 것이 각 개인의 몫이다. 때로는 불평불만이 치솟아 오를 때, '감사함'은 현재를 뛰어넘게 하는 억압의 형태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사람들은 버겁다는 말을 하염없이 품어내면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즐긴다. 즐기지 않고 살아내기만 한다는 것이 자신에게 무력함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설령 즐기지 않는다고 해서 별반 달라질 것도 아니다. 그래서 직장생활에서도 자신만의 슬기로움이 필요한 것이다. 또는 슬기로움 속에 '감사함'은 여러 곳에 생생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때는 온통 불평불만이다. 즉 '만족함'이란 딴 세상의 것으로 간주된다. 우리가 한 달 열심히 일해서 겨우 이백만 원 남짓 벌고, 그 돈으로 겨우 생활을 꾸려 나가는 과정에서 감사함과 만족, 그리고 현실에 대한 불평불만은 선택적 상황이 아니라 부정적 억압을 가장한 필연적 선택이라면 자신에게 있어서 직장은 어떤 슬기로움을 찾을 수 있는가?

중요한 사실은 직장 안의 에너지의 흐름이 부정의 기운을 계속 받는 곳이라면 빠져나오는 것이 곧 슬기로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이 못한다면 그 또한 그 사람만의 또 다른 방식의 슬기로움이 있음을 신뢰함으로 존중할 뿐이다. 생계유지를 위한 직장생활에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피폐하게 할 필요는 없다. 삶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직장의 현 주소가 꼭 그 곳만이 자신의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해 두고 자신을 격하게 아프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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