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네 번째 이야기] 국민 공감대와 반성 패싱한 ‘대통령 사면권’

자료사진.

그해 겨울, 나는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그 순간만은 기자가 아닌, 국정농단에 분노한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이었다. 광장의 촛불은 대통령 탄핵과 파면이라는 혁명의 역사로 타올랐다. 

파면당한 대통령은 뇌물죄 등 혐의로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시민혁명이 만들어낸 일대 사건이었다.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고, 민주당은 10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그 후 4년 9개월, 문 대통령은 수감 중인 전직 대통령을 사면·복권했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하지만 이번 사면은 단순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그래서 국민의 정서와 공감대를 충분히 확인한 뒤 결정했어야 옳았다. 대통령 혼자 ‘결단’을 내린 건, 어떤 명분과 논리로도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여야, 보수·진보 모두 만족하지 않는데 무슨 ‘국민통합’을 이야기할 것이며, 5대 중대 범죄자(뇌물, 알선수재, 알선수뢰, 배임, 횡령)에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는 약속은 또 어찌할 텐가. 그는 국정을 농단한 죄로 징역 22년에 벌금 180억원, 추징금 35억원을 선고받은 중대 범죄자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사면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이 사면이 통합의 방안이 될 수 없다”라고 전직 대통령 사면에 선을 그었다. 그 말이 떨어진 지 1년도 되지 않았다. 흔한 말로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시점에 ‘특별사면’이란 면죄부를 줬다. 

민주당의 대표도, 대선 후보도, 청와대 참모진도 다들 “몰랐다”고 한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은 지난 27일 한 라디오 인터뷰 중에 대통령 임기 내 특사가 또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번 사면도 몰랐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정치적 고려나 의도는 없었다고 하나, 어떤 국민이 액면 그대로 믿을까. 모든 짐을 혼자 떠안겠다는 식의 문 대통령 태도는 원칙과 정의가 무너지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말로는 오늘 자정을 기해 사면되는 전직 대통령은 곧 출간할 자서전에 자신의 과오에 반성은커녕, 탄핵을 부정하고 선동이라고 매도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국민 공감대’와 ‘반성’이라는 사면 전제조건을 지키지 않았다. 마치 군사 작전하듯 사면권을 행사했다. 이러려고 나를 비롯해 그 많은 국민이 그해 겨울 촛불을 들었는가. 누구 덕에 대통령이 됐는데. 

대통령 사면권도 결국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주권자를 향한 진지한 반성과 용서를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정자 맘대로 풀어주는 게 권력이고 정부라면, 나는 차라리 무정부주의자가 되고 싶다. 박근혜로 시작한 정부가 박근혜로 끝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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