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충분치 않다’ ‘공수처 길들이기’

공수처1호 사건
‘피의자’ 윤석열 후보에 대한 조사 어렵게 됐다

국민인권보호에 기여했다고 볼 것인가?
‘눈엣 가시’‘밀월은 없다’고 볼 것인가?

한기원 칼럼니스트
한기원 칼럼니스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수처는 그 출범목적이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직무범죄 등에 대한 독립적 수사기구로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척결하여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의 신뢰성을 제고하는데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당초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꾸려진 공수처의 출범은 건국 이래 지난 수십년간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해온 체계를 허물고, 형사사법시스템의 일대 전환을 가져오는 헌정사적 사건이었다.

2일 공수처가 청구한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인물인 손준성 검사에 대한 두번째 구속영장까지 기각되면서 난감한 상황을 맞게 됐다. 

법원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반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상당성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다"며 손 검사의 손을 들어줬다.
공수처가 아른바 '승부수'를 던졌지만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앞서 법원은 공수처가 청구한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리는 등 수사에 한차례 제동을 건 데다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두 차례 기각되면서 수사의 부담감은 더욱 커졌다.

그야말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공수처의 처지가 풍전등화다.

당초 공수처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전 검찰총장)를 피의자로 놓고 수사했다. 
그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검찰이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야당에 범여권 인사 고발을 사주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공수처는 윤 전 총장의 지시나 승인, 또는 묵인이 있었을 거로 봤다. 
손 전 정책관은 그의 지휘를 받아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에게 지시했을 거로 의심했다. 

하지만 법원은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 등 일반적 기각사유가 아닌 ‘구속의 필요·상당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난 10월에 이어 영장을 또 기각했다. 

어떻게 봐야 할까.

이번 일을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같은 시험을 합격하고 같은 교육기관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상당수가 특정대학 선후배 관계 등으로 얽혀있는 인물들로 판사와 검사들이 구성되어 있는 연장선상에 공수처와 법원이 존재한다는 것에 상당한 좌절을 경험한 셈이 됐다.

검사가 직접 인지수사한 사건의 경우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
물론 이번 고발사주의혹사건이 공수처 스스로 인지한 사건은 아니라고 치더라도 전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는 사실상 ‘공수처 1호’사건 이라는 점에서 ‘인지사건’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면 공수처와 법원이 ‘이제 우리 밀월은 그만하자’라든가 ‘사법부의 독립이나 영장제도 본래의 취지로 돌아가자’고 약속이나 한 것일까.
당혹스러운 것은 ‘국민 몫’이어야 하는 걸까.

‘손준성 영장기각’을 보는 시선이 참으로 엇갈린다.
물론 법원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법원이 사법부의 독자성을 통해 ‘국민의 인권보호’에 기여했다고 볼 것인가.
아니면 보수적인 조직인 사법부가 애초부터 반대해 온 공수처에 대해 ‘길들이기’를 선언한 셈인가.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

어쨌든 공수처가 고발사주의혹과 관련, 한 명도 사법 처리하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공수처의 수사 의지는 물론 능력, 나아가 존재이유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선정국에서 윗선 수사에 차질을 빚게 됐음은 국민입장에서 상당한 유감이다.

대통령선거가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도 공수처에는 부담이다. 
결정적 단서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 대선후보를 소환한다면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으나 좌고우면 말고 원칙에 충실한 수사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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