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허태정 대전시장에 보내는 제언

끔찍한 불행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어찌 해결해야 할까?

I.

대전시 소방공무원이 직장 내 갑질을 못 견뎌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곧이어 25세의 대전시 새내기 공무원도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전시 감사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했다. 한 달 후, 감사를 중단했다. “진상규명이 어렵기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라는 변명이었다. 고인의 동기들은 절망했다. “어이가 없다.” “누구 하나 직위해제조차도 없다.” “사람이 목숨을 던져도 변하지 않을 조직이다.” 체념과 절망이 넘쳤다.

그러자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들의 억울함을 밝혀 달라”고 호소를 올렸다. “대전시 감사위원회가 조사 책임을 회피하며 사건을 경찰로 넘겼다. 시간을 끌며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행태다. 아들을 두 번 죽이는 꼴이다”라는 하소연이다.

사건이 또 터졌다. 대전시의 공직기강이 위험 수위를 넘었음을 보여준 사례다. 술 취한 대전시 공무원이 가로수 경계석을 이유 없이 도로에 던졌다. 20대의 오토바이 배달 청년이 넘어져 사망하고 말았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급기야 대통령이 대전시의 악성 사례를 들고 나섰다. 정권 말기의 공직기강 해이가 걱정된 것이다. 결국, 전국 언론에 오르내렸다. ‘대전시, 도대체 왜 이러나?’ 중앙정부와 전 국민에게까지 망신살이 뻗쳤다. 대전시장이 대책 회의를 열었다. “간부 직원들부터 구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대전시장은 새내기 공무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소통 자리도 마련했다.

II.

그래서 근본 원인을 찾아 대책을 마련했을까? 대전시가 제시하는 조직문화 개선 계획을 보면 어이가 없다. “MZ세대에 걸맞은 공정한 평가 시스템을 만들겠다”라고 한다. 세대를 불문하고 공정성은 평가의 ‘기본’이다. 그간 이 기본이 대전시에 없었다는 게다. 독감 걸린 사람을 치료는 하지 않고 ‘기본’ 체력을 기르라는 처방이 어이없다. 전문성 없이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당연한 말이다.

정시 퇴근, 유연 근무제 등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새 틀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역시 이 시대에 너무 당연한 말이다. MZ세대 때문에 비로소 인권을 생각하다니. 그런데 상사의 인식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새 틀만 도입하면 그게 제대로 작동할까?

소통 게시판을 설치한단다. 아니, 게시판에는 상사의 갑질 신고가 절대로 올라오지 않는다는 그 엄연한 사실을 모르는가? 예를 들어, 대전시 갑질피해신고센터는 이미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아무리 익명이더라도 직원들은 작성자 신분이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잠재적 두려움을 이해 못 하는 순진함이 어이없다. 갑질한 상사는 무관용 처벌을 단행하겠다고 한다. 대전시 감사위원회는 독립성이 없기에 제 식구 감싸기를 하게 된다. 그 태생적 한계를 그대로 놔두고 할 말은 아니다.

III.

‘조직문화’, ‘조직 기강’,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선 조직문화부터 보자. 일란성 쌍둥이 A와 B가 각기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에 입사했다고 치자. 10년이 지나면 같았던 성격이 확연히 달라진다. A는 실적주의의 가치관과 꼼꼼하고 치밀한 행동을 보인다. 반면 B는 ‘하면 된다’라는 도전의 가치관과 ‘밀어붙여’ 식의 행동을 보인다. 10년간 강한 조직문화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즉 조직문화란 조직구성원들이 공유한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말한다. 일류조직의 문화는 통상 실적주의, 품질지상주의, 도전, 혁신, 그리고 고객지향이라는 가치관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반면 쇠퇴하는 조직의 문화는 인정(人情)주의, 무사안일주의, 그리고 보신주의로 넘쳐난다.

대전시의 부정적인 조직문화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떻게 제거해야 하나? 그래서 어떠한 긍정적 조직문화를 창달하겠다는 계획인가? 공정한 평가 시스템을 만들기 전에 과연 실적주의 조직문화를 확립했는가? 인정주의와 무사안일주의 문화는 제거했는가? 그런데 바람직한 조직문화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조직문화가 결코 직원들이 학습하고 토론해서 만들어지진 않았다. 창업자 이병철, 정주영 회장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이 결정적이었다. 즉 조직문화는 리더가 창달하는 것이다. 세계 모든 조직문화 사례에 예외는 없다.

과연 누가 부정적인 대전시의 조직문화를 제거하고 바람직한 조직문화를 창달해야 하나? 대전시에 올바른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심는 주체는 누구일까? 결국 리더다. 대전시장이다. “간부 직원들부터 구태를 개선해야 한다.”라는 대전시장의 말은 그래서 틀렸다. 자신이 우선 변화의 대상이다. 자신이 조직문화 혁신의 주체라는 인식이 긴요하다.

IV

남충희 국민의힘 대전시당 경제특위 위원장
남충희 국민의힘 대전시당 경제특위 위원장

조직기강(紀綱, discipline)이란 조직구성원들이 바람직한 가치관과 행동양식, 그리고 규율과 질서를 굳게 지키는 현상을 뜻한다. 기강이 바로 서 있는 조직은 구성원의 수용 정도가 높다. 그리고 보상과 처벌이 엄정하다. 군대의 기강을 ‘군기(軍紀)’라고 한다.

예를 들어, 육군 3사단의 부대 상징과 경례 구호는 ‘백골’이다. ‘죽어서 백골이 되더라도 조국을 지키겠다’라고 조직구성원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를 표현한 것이다. 그에 따라 군기 역시 엄정하다. 해병대의 군기는 가장 세다. 즉 ‘죽어도 끝까지 싸운다’라는 표준적 행동양식을 대원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명령 복종과 규율 준수도 엄격하다.

대전시 공무원들은 공직 사명에 충만한 상태인가? 시민들의 복리 증진을 위해 죽어도 끝까지 싸우는가? 상사들은 인재 육성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나? 그래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애정과 관심 그리고 예절을 유지하며 대하는가? 일류조직답게 상사들은 쉬지 않고 직원들을 면담하고 그들의 애로사항과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해서는 안 될 일을 서슴없이 마구 자행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데 조직기강은 누가 세우는 것일까? 조직구성원들이 학습하고 토론해서 세울까? 아니다. 주체는 역시 리더인 대전시장이다. 시장이 바람직한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제시하고 엄정한 보상과 처벌 체제를 작동시키는 장본인이라는 말이다.

V.

최근 대전시에서 벌어진 불행한 사건들의 근본 원인은 허술한 조직문화와 무너진 조직 기강 때문이다. 결국 대전시장 책임이다. 원인과 책임을 다른 곳에서 찾으면 어이없는 일만 벌이게 된다. 예를 들어, 대전시는 “세대 간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에 항상 노출됐다”라고 극단적 사건의 원인을 호도하고 있다. 심지어 이 사태의 책임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있다는 양비론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이제 대전시장에게 다음의 해결책을 제안한다. 대전시민과 공직자들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서다.

첫째, 대전시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확보하라. 현재 대전시 감사위원회의 위원장은 시청 내부 공무원들이 순환해서 맡고 있다. 가족끼리 어찌 감사와 처벌의 엄정함을 기대할 수 있나. 검찰이나 감사원에 협조를 구하라. 그 출신에게 위원장을 맡기자. 대전 사람이 아니면 더 좋다. 조직기강을 바로 잡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또한 전문성이 높아지면 예방 감사와 컨설팅 감사까지도 가능해진다. 10여 년 전 경기도가 이렇게 했다. 그래서 경기도의 공직 청렴도가 바닥에서 1등으로 향상되었다. 대전시장이 행정 혁신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은 감사위원장이 누구인가에 달렸다.

둘째, 시장이 9급, 8급, 7급 직원들 면담에 솔선수범하라. ‘소통’이라 이름 붙인 형식적, 일회적, 과시적 행사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서너 명의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며 조용히 경청하는 것이다. 슬며시 국장과 과장이 어떤 상사인지도 물어보자. 인재를 최고의 자산으로 여기는 일류조직의 CEO들이 늘 하는 일이다.

꾸준히 하면 직장 내 괴롭힘이 사라진다. 간부 직원들도 따라나서며 면담이 활성화된다. 정기적으로 면담 만족도도 조사하라. ‘소통’은 쇼가 아니다. 소통게시판으로 될 일도 아니다. 조직 내 소통 활성화의 8할은 오직 CEO의 애정과 관심 그리고 의지와 솔선수범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리더의 철학과 가치관이 확고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일이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철학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답하기다. ‘대전시 공무원은 왜 존재하는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어떤 행동양식이 바람직한가?’ 이에 대한 대전시장의 답변이 명쾌하고 또한 언행이 일관되어야 한다.

대전시 공직자 모두가 수용하고 따랐다면 독선이라는 비판은 나오지 않을 것이며, 바람직한 조직문화와 엄정한 조직기강이 이미 창달되었을 것이다. 또한 모두가 공직 사명감과 자부심을 품고, 엉뚱한 일 하지 않고, 한눈팔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늦었지만 대전시장이 일관된 언행으로 답해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청년 공무원들을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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