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공약이행...독립적 합의제 감사기구 약속 ‘어디로’

지난 2019년 2월 대전시 감사위원회 출범당시 모습. 자료사진.
지난 2019년 2월 대전시 감사위원회 출범당시 모습. 자료사진.

대전시 감사위원회가 새내기 공무원의 극단적 선택을 부른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대해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한 지 1개월 만에 “투명한 결과를 확보하기 위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감사위원회는 사건 직후 “수사를 의뢰할 것이냐”는 질문에 “폭행이나 폭언 등 구체적인 사안이 있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유족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이 전국적 이슈로 부상하자, 입장이 바뀌었다. 감사결과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자, 수사기관에 공을 넘기려는 모습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당장 대전시 감사위원회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제대로 조사를 한 것이냐’는 질책부터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의혹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감사위원회를 감사해야 한다’는 뼈아픈 지적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대전시 감사위원회는 지난 2019년 2월 합의제 독립기구로 출범했다. 이전 감사업무는 행정부시장 직속의 감사관실이 맡았다. 직원들이 순환보직으로 감사업무를 맡는데다 독립성도 없어서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때문에 허태정 시장은 후보시절 “감사위원회를 도입하고 시민감사위원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독립적 시민감사위원회 도입으로 행정통제의 실효성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절반만 지켜진 셈이 됐다. ‘감사위원회’라는 외형은 갖췄지만, 과연 독립적 운영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정말 시민주도의 행정통제 실효성이 높아졌는지는 의문이다. 

감사위원회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감사위원장은 외부 전문가 영입이 가능한 개방형 직위로 설계됐지만, 출범 당시를 제외하고 내부승진이나 순환보직의 창구로 기능해 왔다. 감사관에서 감사위원장으로 이름만 바뀌었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감사위원회 독립성 문제는 올해 초 대전시 안팎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옛 충남도청 향나무 훼손 사건’ 당시 단적으로 드러났다. 해당 업무 결재권자인 담당 국장이 감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보니, 위원장을 감사업무에서 배제하고 그를 감사 대상으로 조사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결국 감사위원장이 부임 3개월 만에 물러나는 것으로 논란이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내부승진이나 순환보직이 이어지다보니 ‘독립성 확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새내기 공무원의 극단적 선택을 부른 직장 내 갑질 의혹을 대전시 스스로 규명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팽배했던 것도 ‘독립성 없는 감사위원회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다. 감사위원회의 기능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지 않는 이상, 대전시 행정쇄신에 대한 의지 자체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시장의 공약은 대시민 약속이다. 그리고 모든 약속은 그 외형보다 내용이 중요한 법이다. 대전시가 ‘감사위원회’라는 외형이 아니라 ‘독립된 합의제 감사기구’라는 내용을 제대로 채우고 있는지, 재평가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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