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 조치원대동초 교사

<여는 글> 학교 내에서 ‘학생자치’ 업무는 인기 있는 일이 아니다. 뚜렷하지 않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격려하고 뒷받침하는 일은 담당 교사의 시간과 에너지가 한없이 들어가는, 한마디로 말하면 가성비 떨어지는 일로 여겨진다. 

학생자치 업무는 그럼에도 참 매력적인 일이다. 학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들의 눈으로 학교를 바라보면 교사인 내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들인 품에 비해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들이 서서히 학교의 공기를 바꾸고 있다. 학교의 중요한 변두리 '학생자치' 이야기를 연재한다. 

조치원대동초 게임대회 모습.
조치원대동초 게임대회 모습.

“게임대회는 꼭 하고 싶어요.”

당찬 전교회장의 말에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12월 있었던 학생회 선거에서 전교회장으로 선출된 해담이가 내세운 공약 중 하나가 바로 ‘게임대회’다.

‘아무리 공약이라도……. 학교에서 온라인 게임대회라니.’

담당 교사인 나부터도 ‘게임대회’라는 말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더 솔직히 말하면 학생들이 좋아하는 일일수록 교사의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어물쩍 넘어가고 싶다. 사실 학생회장 공약에 그렇게 신경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만 모른척하면 되는 일이기도 하다.

“게임대회를 왜 해야 하지?”

“너희들, 준비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지?”

“게임 종목은 어떻게 정하려고?”

“코로나라서 방역 수칙도 지켜야 하는 거 알지?”

아이들이 알아서 포기하도록 잇달아 질문을 해본다. ‘휴, 그럼 그냥 안 할게요.’라고 아이들이 말해주길 내심 기대하며. 그런데 아이들은 학생 게시판에 붙일 안내문과 하고 싶은 모바일 게임을 적어내는 응모함부터 준비하겠다고 한다.

‘아니, 너희들 언제 이렇게 치밀해졌니?’

그래 해보자. 두어 달 시간을 끌다 5월이 되어서야 결심을 했다. 설문조사를 거쳐 가장 적합한(?) 게임으로 ‘카트라이더’가 선정됐다. 시시하다고 항의하는 고학년이 몇 명 있었지만, 선배들이 양보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학생회에서는 신청자를 받고 대진표를 짜고 상품을 정하고 당일 도우미와 해설자도 정했다. 해담이는 대회 전날 밤늦게 자신이 쓴 사회자 대본을 봐달라며 톡을 보내왔다.

내 역할은 아이들이 놓치는 부분이 없는지 살피고 학교에서 지원할 부분을 찾아서 돕는 것이다. 좀 더 박진감 있는 게임 중계를 위해 태블릿PC 화면이 강당의 빔프로젝터에 미러링(mirroring) 되도록 장비를 체크하고, 아이들이 말한 상품을 주문해주었다.

무사히 게임대회가 끝났다. 물론, 준비 과정부터 여러 이야기가 들려왔다.

“학교에서 온라인 게임을 하도록 더 부추기는 것이 될까 봐 걱정스러워요.”

“학교생활 하면서 학생 공약이 지켜지는 걸 처음 봤어요. 너무 신기해요.”

이런 다양한 여론(?)을 청취하는 것도 담당 교사의 일이다. 중요한 것은 학생자치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더 의미 있는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학생자치는 변두리에 속한다. 당장 해결이 어렵고, 성과가 보이지 않는 자잘한 학생들의 요구사항 속에서 교사가 지치기 쉬운 업무이기도 하다.

학생자치를 바라보는 교사의 생각도 각기 다르고, 때로는 학생과 학교 사이에서 적당한 선을 찾아야 하기도 한다. 변두리에 있는 것을 중심으로 옮기는 일은 당연히 어렵다. 그래서 이런 목소리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게임대회가 교육적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이전에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본인들의 공약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일은 직접 해보지 않고는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게임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학생들에게서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을 기꺼이 하는 즐거움, 여럿이 함께 문제를 해결해가는 지혜, 다른 친구를 위해 양보하고 봉사하는 마음, 무사히 일을 마쳤을 때의 후련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이지혜 조치원대동초 교사.
이지혜 조치원대동초 교사.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 학생들은 그저 친구들과 한번 신나게 놀고 싶었을 뿐일지 모른다. 다음에, 나중에, 내년에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말이다. 학생들에게 학교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무대를 즐긴 주인공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게임대회가 계속될지 나도 궁금하다. 학생들이 답을 찾을 것이라 믿는다. 학생자치 담당 교사는 오늘도 학생들과 적이자 동지로 끈끈하게 만난다. 우리는 조금씩 함께 성장하는 중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