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은 언론개혁의 방편, 본말전도 안된다

문재인 대통령은이 청와대 수석 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자료사진.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이 청와대 수석 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자료사진. 청와대 제공.

여야가 강대강 대치를 벌였던 언론중재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을 오는 27일로 미루고 협의체를 꾸려 합의점을 찾아가기로 했다. 친문 강성 지지층의 언론개혁 요구에 언론중재법 개정으로 화답하려던 민주당이 출구전략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가짜뉴스와 허위보도 등에 대한 강화된 징벌조항을 담고 있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개혁’과 ‘언론자유 위축’이라는 양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찬반논란이 컸다. 찬성측은 허위보도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언론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한 반면, 반대 측은 징벌적 법률이 남용돼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반대논리를 폈다.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 찬반논란은 시대적 화두인 언론개혁 의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도 발휘했다. 그러나 정파적 충돌로 인해 본질인 ‘언론개혁’은 사라지고 방법론에 불과한 ‘언론중재법’이 더욱 크게 부각되는 부작용도 낳았다. 본말이 전도된 셈이다.

언론중재법에 대한 정파적 접근을 넘어 언론에 대한 혐오까지 불러일으키며 정치적 마타도어가 난무했다. 그 대상은 정적인 보수야당을 넘어 우군인 민주당 내 신중론자나 진보정당에게로 향했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상정에 대해 “질병보다 위험한 처방전”이라고 신중론을 폈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악성댓글에 시달렸다. 민주당 중진 이상민 의원이나 박용진 대선 경선후보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자폭탄에 시달린 이상민 의원이 “사생활이나 가족에 대한 언급까지 나와 섬짓했다”고 토로할 정도. 언론중재법 개정에 신중론을 펴면 ‘언론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이 같은 충돌이 계속되는 이유는 우리사회가 아직 사실과 관점(견해)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세상을 흑백논리로만 바라보는 단차원적 접근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언론에 있다. 사실의 영역과 관점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사실과 관점을 적당하게 버무려 독자들의 눈을 속여 왔다. 그와 같은 보도관행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제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찬성이냐 반대냐는 단편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언론개혁’과 ‘언론자유 보장’이라는 두 공익가치가 상충되지 않는 타협점을 모색해야 한다. 검사 모두를 적폐로 몰아 검찰개혁을 이룰 수 없는 것처럼, 언론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만으로 언론개혁을 이룰 수 없다.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이 강화될 경우, 언론이 좀 더 신중하게 사실관계를 다루고 보도가 미치는 파장까지 고려하는 엄격한 내부시스템을 갖추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의 본질적 기능인 비판보도가 크게 위축될 위험도 상존한다. 언론이 징벌을 피하기 위해 비판기능을 회피한다면 그 폐해가 더욱 크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일선 취재현장에서는 수사기관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 보도의 사실여부를 최종적으로 사법부가 판단하는 사례가 많아진다면, 결국 언론은 보도의 사실성 여부에 대한 안정성을 갖추기 위해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의 정보에 지금보다 더욱 의존해야 한다.

취재원 보호 등 언론의 취재윤리도 훼손될 우려가 있다. 비리사건 등의 제보를 받아 보도한 언론이 허위·왜곡보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재판정에서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경우, 취재원 보호 의무를 끝까지 지켜야 할지에 대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언론개혁’이라는 대의에 동의하면서 ‘언론중재법 개정’이라는 방법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에 개혁의제의 정점에 서 있는 대통령도 동의하고 있다.

언론중재법 찬반논란 과정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1일 청와대 내부회의에서 여야 합의에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고 국민의 알권리와 함께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며 “관련 법률이나 제도는 남용의 우려가 없도록 면밀히 검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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