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지난 주말 한 중앙 일간지에 실린 ‘정세균 총리님께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호소문에 눈길이 갔다. 공주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는 사람의 글인데, 당사자의 일방 주장이니 만큼 사실여부나 내용의 무게까지 잘 알 수는 없다. 다만 적지 않을 광고비를 들여 공개 호소문을 낸 입장과 절박한 심정은 읽혔다. 

호소인의 양조장은 일 년 매출액이 12억 원 쯤이라고 하니 정부에서 4차 지원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10억 원 미만의 소상공인 기준에서 조금 벗어난 규모의 사업자라 할 수 있다. 이 양조장은 저가 제품의 술을 빚고 있는데 국산 쌀과 수입쌀 사용을 두고 농관원의 조사를 받고 있는데, 너무 가혹하니 총리께서 살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양조장에는 2020년 9월 중순 경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단속반원의 현장 조사와 5000장 이상의 자료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 후로도 추가 자료 요구에 이어 거래하는 정미소를 찾아가 반 협박까지 하며 서류를 가져갔는가 하면 정미소 담당 세무사무실까지 가서 서류를 가져갔다고 한다.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지금도 지체장애인까지 불러 조사하고 공장장과 경리 등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되면 나올 때까지 털려고 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는 의문까지 하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조사에 시달리다 보니 엄청난 스트레스에 정신병, 우울증 약까지 복용하고 있다고 하니 그 고충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야담 하나를 꺼낸다. 옛날 죄인을 벌주는 방법의 하나로 효수(梟首)라고 있었다. 흔히 사극에서 망나니가 칼춤을 추다 술 한 잔을 입에 옹 물었다가 칼날에 품고 죄인의 목을 베는 것이다. 이 때 죄인의 가족이 망나니에게 뇌물을 준다고 했다. 무딘 칼로 고통을 주지 말고 날이 잘 선 칼로  단 번에 베어달라는 부탁이었다는 것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그 순간의 공포와 고통을 줄여 달라는 것이니, 얼마나 간절한 사연인가? 훈육 선생님으로부터 단체로 매를 맞을 때 점점 다가오는 차례에 공포감을 느낀다. 예방주사를 맞을 때도 마찬가지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고통은 크다. 차라리 아프더라도 빨리 끝나는 것이 후련하다. 긴장하며 기다리는 동안의 괴로움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보여준다.

미적대지 않는 공권력행사를 기대한다

예전 추곡수매가 일선 지방행정에서는 가장 어려운 일의 하나였다. 시중가격에 비하여 낮은 정부수매가격, 수분함량의 엄격한 기준 때문이었다. 할당된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일선 공무원들은 ‘별의 일’을 해야 했다. 농민이 어렵사리 수매 현장까지 벼를 가져왔으나 등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로 싣고 가는 경우도 있으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설득하고 독려한 공무원의 처지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때 슬그머니 농산물검사공무원의 ‘자빡(공판장 같은 데서 가마니나 마대 따위에 담은 알곡을 검사한 뒤 등급을 표시하기 위하여 찍는 기구)’을 빼앗다시피 하여 가마니에 찍으면 모른 척 눈감아 주는 여유가 있었다. 국립농산물검사소의 기능이 확대되면서 만든 기관이 지금의 농관원이다.

공권력은 독점적이다. 그 공권력을 마주하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의 처지는 ‘을(乙)’이다. 때문에 공권력 행사는 독점적인 권한을 남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행사하여서는 아니 되고 나아가 그런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잘, 잘못을 가려 처벌할 것은 엄중하게 조치하되 미적거리지 말고 신속하게 매듭지어 되도록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경기침체와 코로나19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과 중소 사업자를 돕고 북돋아 주는 것이 정부이고 공무원의 역할이다. 이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이고 있는가? 잘못이나 위반사항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처분을 내려야 마땅하다. 다만 공정하고 신속하게 조치하여 불필요하게 고충을 받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호소문 내용에 과장이 없다면 그렇게 복잡하고 시간을 끌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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