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완의 포토詩세이]

봄이 내게 척후병을 보냈다
염탐의 자리에 남는 온갖 흔적들
어설퍼 웃음이 난다

가지마다 부푼 꽃망울
사람들의 달뜬 발걸음
아닌 척 하려는 추위까지 

다 알아 하지만 모른 척 해줄게 
그러니 나의 방심을 틈타
늦지 않게 쳐들어 오렴

설악초 싹 돋는 소리
홍매화 몽우리 터지는 소리
도롱뇽 알 깨지는 소리
너구리 기지개 켜는 소리
봄의 하품에 아이들 덩달아 입 벌려
꿈 한 모금 들이키는 소리
네가 보내는 소리들
이제 들.린.다.

모든 계절이 그렇듯 봄도 '조짐'을 먼저 보낸다.
모든 계절이 그렇듯 봄도 '조짐'을 먼저 보낸다.

사람 심리가 그렇다. 좋으면 영원했으면 좋겠고, 괴로우면 빨리 지나갔으면 싶다. 좋은 계절은 짧고 힘든 계절이 긴 이유다. 통계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 아닐까 싶다. 아니,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생명들에게 봄은 가장 반가운 계절일 것이다. 따뜻해지는 날씨가 겨우내 잔뜩 웅크렸던 몸과 마음에 기지개를 일으킨다. 

계절이 네 개라면 환절기(換節期)도 네 개일 터. 가장 설레는 환절기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일 듯하다. 모든 환절엔 조짐이 있다. 봄도 그렇다. 가도 될까, 아직 아닌가 조심스러운 봄이 조금씩 신호를 보낸다. 새싹을 틔우고, 꽃망울을 부풀린다. 기온을 높여 사람들의 옷차림을 가볍게 만든다. 

그런데 이 녀석, 봄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닌 척하려고 때늦은 추위도 보낸다. 화들짝 놀라 식물은 봉오리를 닫고, 사람은 다시 어둡고 두터운 옷을 찾는다. 쉽고 뻔한 계절이라 생각하면 호되게 당한다. 구애 상대의 도도한 마음 같다. 쉽게 얻어지는 봄은 없다. 

이지완 TJB PD
이지완 TJB PD.

목 빼고 기다리는 대신, 내가 택한 방법은 ‘모른 척’이다. 염탐을 알아차린 봄이 놀라 더 멀어지면 곤란하기 때문. 이렇게 두어 주를 지내면 선발대가 아니라 봄의 본대가 온다. 누구나 계절이 바뀌는 걸 알지만 다가오는 봄을 더 잘 즐기는 방법은 눈과 귀, 코와 입, 피부 등 모든 감각기관을 더 크게 여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코와 입이 막혔다면 귀라도 크게 열어보자. 봄풀 돋는 소리, 봄꽃 터지는 소리, 동물들의 기지개 소리, 아이들 재잘대는 소리가 들리는가? 좋은 계절이라 금세 지나갈 봄을 아쉬워하기 전에 몸으로 맘으로 더 오래, 더 많이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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