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④ 평등감수성 일깨운 바이러스
가치 중심 사회 변화, 사회지도층이 읽어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지난 한 해 개인의 일상을 붕괴시킨 동시에 인류 공동운명에 대한 감각을 일깨웠다. 효율적인 감염 차단을 위해 지방정부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해졌고, 이는 지방분권시대의 가능성을 엿보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코로나 1년, 백신 접종을 앞둔 지금. 바이러스로 촉발된 기후위기와 돌봄 노동, 공교육의 역할, 민주주의 위기론에 대한 백신 준비는 잘 되고 있을까? ‘코로나 1년,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들’을 주제로 앞으로 지방정부가 의제화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주>

홍만희 미즈자이공동체 대표.
홍만희 미즈자이공동체 대표.

학교에 가야할 아이들과 여가 활동을 즐기던 노인들, 재택근무를 하게 된 직장인들까지 모두 집으로 향했다. 외출을 삼가고,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 ‘가정’에 머물러달라는 국가 차원의 간절한 요청 때문이다.

공교육 체계가 무너지면서 ‘돌봄’은 가장 시급한 현안이 됐다. 정부는 맞벌이 가정을 위한 긴급돌봄 지원책을 발표하고, 기업은 재택근무나 유연근무제를 확산했다.  

반면, 전업 돌봄 양육자에 대한 관심은 미진한 수준에 그쳤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전업주부의 자녀 돌봄 시간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약 3시간 32분 늘은 것으로 분석됐다. 맞벌이 여성은 1시간 44분, 맞벌이 남성은 46분, 외벌이 남성은 29분 증가했다. 

‘돌봄 책임’에 관한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그 체감은 더디다. 종일 돌봄 없이도 가정 내 양육이 수월한 사회, 돌봄 책임 분담으로 평등감수성이 확산된 사회로의 변화는 여전히 느림보 걸음을 걷고 있다.

누구나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홍만희 미즈자이공동체 대표를 만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촉발한 여성 문제, 변화된 리더의 자격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다.

다음은 홍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ㅡ 지난 몇 년 간 마을공동체 활동을 활발히 해온 것으로 안다. 지난 1년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공동체 활동이 어려웠을 것 같다.

“미즈자이공동체는 조치원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다. 2016년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주한 뒤 지난 2017년부터 공동체 활동을 해왔다. 지난 한 해는 ‘정말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민이 많았던 시기다. 아파트라는 터전을 중심으로 진행해 온 생태마실, 전래놀이, 경로당 어르신 프로그램, 학습활동, 독서동아리 활동 등이 모두 타격을 입었다.

커뮤니티센터에서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공공기관이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문을 여닫다보니 갈 곳이 없었다. 이 상태론 활동 지속이 어렵겠다 싶어 올해는 작은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올해는 이 공간에서 조심히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고, 사회적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려 한다.”

ㅡ ‘집’이라는 공간에 머무는 생활이 지속됐다. 동시에 문제가 된 건 그 집을 누가 담당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코로나 공포 속에서 ‘돌봄 노동’은 생각보다 큰 의제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돌봄뿐만 아니다. 가사노동, 감정노동, 여기에 공교육 안에서 이뤄졌던 학습까지 전업 양육자 차지가 되면서 역할이 가중됐다. 돌봄 휴가를 장려하고, 돌봄 지원비를 지급하는 등 작은 변화가 있기도 했지만, 전업 돌봄 위치에 놓인 여성들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최근 논문을 보면, 맞벌이 여성과 남성, 외벌이 남성 모두 돌봄 시간이 조금씩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고, 이 수치는 큰 차이가 없었다. 반면, 전업주부 여성들은 하루 12시간이 넘는 돌봄노동에 처했다는 통계가 있다. 맞벌이 가정이나 일하는 여성에 대한 고민은 작게나마 있었지만, 정부와 지자체 모두 전업돌봄 여성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ㅡ 여성 참여도가 높은 마을공동체 활동 안에서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체감했을 것 같은데.

“일하는 성인은 직장이라는 공간이 주어진다. 사람들과 관계 맺고, 일을 해내는 성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전업 돌봄 상황에 처한 엄마들은 말 그대로 한계에 다다랐다. ”여자는 식구가 일이다“라는 말을 옛날 어머니들이 많이 하곤 했는데, 2020년, 2021년에도 마찬가지다.

전업돌봄 양육자들에게 동반된 또 하나의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생활하다보면 몰랐던 자녀의 모습도 발견하고, 혼낼 일도 많아진다. 내가 아이를 잘 돌보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고, 미디어에 과노출되고, 스트레스가 많아진 아이들을 대하면서 생기는 갈등마저 혼자 해결해야 한다. 육체적 한계에 더해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지역에서는 이런 문제를 세밀히 살펴 지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홍 대표가 평등감수성, 다양성이 충족된 사회로의 변화, 코로나 이후 리더의 자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홍 대표가 평등감수성, 다양성이 충족된 사회로의 변화, 코로나 이후 리더의 자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ㅡ 돌봄 책임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려면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하는데, 정책 측면에서 보면 아직은 돌봄의 연장이나 현금성 지원책 마련 정도만 이뤄지고 있다.

“공적 공간을 통한 돌봄 연장은 과도기적인 정책이라고 봐야 한다. 저녁 늦게까지 돌봄 시설에 맡겨지는 일은 당사자인 아이에게도 힘든 일이다. 온종일 돌봄이 과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맞는지 되돌아볼 때가 됐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이 줄어 부모가 일찍 가정으로 돌아가는 일은 국가의 경제, 일자리 정책이 같이 바뀌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북유럽 국가들을 보면, 성평등 정부, 페미니즘 정부를 이야기한 지 이미 오래됐다. 스웨덴은 저출생 정책도 폐기했다. 개인의 삶과 일상, 건강과 안전, 행복과 환경을 추구하는 사회로의 변화가 지구 어디에선가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데, 한국에선 코로나 이후에도 이 담론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어 아쉽다.”

ㅡ 평등감수성이 확산되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인식 개선에 더해 제도 개선, 정책 패러다임 변화가 필수적일 것 같은데.

“다양성을 인정하고, 국가와 사회가 모든 국민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 누구나 나다운 인생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저절로 평등감수성이 충족되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위 사회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시대변화를 읽고, 이 변화에 관심 갖는 일이 중요하다.

지금의 사회지도층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꽤나 의식 있다는 사람들도 성인지감수성 문제로 여러 논란을 겪어오지 않았나. 꼰대 대탈출 사회를 꿈꾼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지금도 옳다고 규정하는 순간, 그들은 ‘꼰대’가 된다. 꼰대를 탈출 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의 변화를 인지하고 궁금해 하는 자세뿐이다.”

ㅡ 세종은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인 반면, 아직 시민사회가 성숙되지 않다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의제들이 논의되고 있지 못하다.

“세종은 조마조마한 도시다. 외국인 노동자나 한부모 가정, 성소수자 등 다양한 주체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고 있다. 시끄러움 속에서 해법을 고민하는 게 민주주의인데, 너무 조용하다. 대도시에서 거주하다 오신 분들도 많고, 평균 연령도 낮아서 앞으로 변화하리라 본다. 사회적 자본이 약하다보니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분들이 드러날 수 있는 기회가 적은데, 그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도 고군분투하며 성장 중이다. 지역에서 여러 담론이 나올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협업하는 일에 매진할 필요가 있다.”

ㅡ 코로나 이후 새롭게 떠오른 의제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 리더의 자격을 바꿀 수 있을까.

“이제는 건설이나 성장에 가려져있던 삶의 다양성이나 정신적인 가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본다. 이런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각 분야에서 시민들에게 울림을 주는 리더가 돼야 할 것이다. 중앙과 지역 정치권에서도 이 변화를 1순위에 두고, 학습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는 리더가 앞으로 어떻게 젊은 층의 선택을 받을 수 있겠나.”

ㅡ 코로나 시대 2년차를 맞이하며 범사회적으로 가다듬어야 할 자세가 있다면.

“결국 ‘마을이 답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에 성과주의, 물량주의, 특히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성공한 것처럼 여겨져 온 고정관념을 탈피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단 서 너 명이 모이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을 해낼 수 있다.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것을 전제로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주기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위축되고 두려운 상태에서는 창의적인 일들을 해낼 수 없다. 감염이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인식을 확산하고, 방역지침을 지키는 선에서 공동체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달라는 메시지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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