城, 2021-01, 송선헌
城, 2021-01, 송선헌

1. No. 1 도로
 우리나라 1번 국도는 목포에서 신의주까지다. 일제에 의해 계획되고 건설, 대체로 조선시대 옛길을 따라 만들어졌는데 조선시대엔 왕의 행차, 일제 강점기에는 수탈, 6~70년대는 산업화의 핏줄이었고 동학사 입구에 밀양 박씨들이 심은 느티나무 박정자(朴亭子) 삼거리를 통과한다. 

 미국 서부의 No. 1 Highway, Pacific Coast Highway(PCH)는 캘리포니아(CA) 샌디에고에서 시애틀을 거쳐서 캐나다 국경까지 1,055km, 태평양을 끼고 달린다. PCH에서 몬트레이(Monterey), 빅 서(Big Sur), 산 시메온(San Simeon) 구간이 아름다웠다.
PCH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New deal 정책의 산물이다.  
동부의 US Highway No. 1은 키웨스트와 메인 주 포트켄트를 잇는 3,813㎞로 PCH보다 3배 가까이 길다. 
PCH와 US Highway No. 1은 지붕이 열리는 하늘색 차로 죽기 전에 달려봐야 하는 길이다.

2. Hearst Castle, HC는
 HC는 신문의 왕(新聞의 王), 20세기 초 미국의 거물,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Citizen Cane)’의 실제 모델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 1863~1951), H의 집이다.
H의 아버지는 광산업으로 부를 축척, 상원의원을 지냈다.
H는 SF(샌프란시스코) 출생, 하버드를 졸업, 아버지의 ‘이그재미너’를 경영하면서 신문계에 진출했다.  
H는 행동 언론, 스스로 뉴스를 생산하고 기사화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H는 1904년 대통령에도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H는 이후 신문, 방송, 통신과 출판까지 언론제국을 만들었고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 본능 자극과 흥미 위주 보도)의 기수다.
H는 대기업과 부패 정치인을 공격,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 범죄, 섹스 등 다양한 기사를 싣고, 기자들의 월급을 2배로 주면서 경쟁사보다 유능한 인재들을 확보한다.
H의 언론 철학은 ‘뉴스는 완전하게 써라, 모든 뉴스는 다 실어라, 필요하면 이야기를 줄여라, 그러나 요점은 그 안에 넣어라’다.

H 가문의 톱 뉴스거리로는 그의 증손녀 패티 허스트(Patty Hearst, 1954~2008)로 Patricia의 애칭이 패티다.
H 사후 20여년이 지나 버클리 2학년인 그녀가 무장단체 SLA(Symboinese Liberation Army, 공생해방군)에 납치(1974), 몸값으로 수백만 달러의 식량을 빈곤한 이들에게 무료 배급할 것을 요구, 수차례 무료식량 배포, 계속되는 요구 끝에 결국 포기, 그녀는 그들의 동료가 되어 은행 강도에 동참, FBI에 체포, 22개월간 수형생활, 카터에 의해 가석방, 클린턴에 의해 사면(2001) 받았다.
 패티는 출소하자마자 옥바라지 한 보디가드와 결혼(처형된 장성택의 딸도 파리 유학 중 북한에서 파견 한 보디가드와 사랑, 소환에 불응, 자살함), 모델이 된 두 딸과 살았다.
 패티 허스트(Patty Hearst, 1988), 게릴라: 패티 허스트의 납치(2004)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패티는 범인들에게 잡힌 인질들이 동화(Assimilation)되어 이들을 돕고, 심지어는 행동을 같이 하는 현상인 스톡홀름(Stockholm) syndrome의 예다. 

HC를 1996년 아내와 둘이 LA에서 운전해서 갔었다.
HC는 No. 1 PCH를 타고 LA 북쪽 400㎞, 산 시메온(San Simeon) 태평양이 접하는 산 위에 있다. 
HC는 여성 최초의 건축가 줄리아 모건(Julia Morgan)이 완성했다.  
HC는 300억 원을 투입해 건설(1919~1947)했다.
HC는 유럽의 고대 건축물, 스페인 수도원과 영국의 800년 된 성 전체를 해체 후 통째로 이전했다.
HC에는 총 56개의 침실, 61개의 욕실과 19개의 응접실이 있다. 
HC는 다양한 정원과 비행기 활주로 등 호화 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HC는 허스트 코퍼레이션(Hearst Corporation)이 저택만 캘리포니아 주에 기증(1957), 주위 땅들은 모두 허스트 가문의 것이다.
HC는 CA 주정부에서 관리, 매년 약 100만 명이 방문한다.
HC을 주인은 ‘라 꾸에스따 엔까따다’(The Enchanted Hill, 마법에 걸린 언덕)라 이름 지었다.
HC의 전성기엔 허스트의 초대장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HC를 개인비행기나, LA로부터 허스트가 소유의 열차를 타고 연예인들과 정치인들이 방문했다. 
HC는 찰리 채플린, 캐리 그랜트, 클라크 게이블, 제임스 스튜어트, 버나드 쇼, 프랭클린 루즈벨트, 윈스턴 처칠... 등이 방문했다.
HC는 초청할 때 방문하는 날짜만 통보했고 떠나야하는 날은 정해지지 않았다. 

HC는 투어로만 가능, Visitor Center에서 산을 버스로 올라간다.
HC는 해안가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사방이 보인다. 
HC의 언덕엔 산양들이 놀고, 아프리카에서 기린이나 코끼리까지 가져 온 동물원도 있었다.
HC에 도착하면 팀으로 가이드를 따라 조심조심 구경해야 한다.
HC에도 CA의 태양은 뜨겁다.
HC의 실외 수영장은 바다의 신, Neptune pool로 물은 항상 적당한 온도로 유지, 탈의실만 17개, 조각상들은 이탈리아 Carrara 대리석이다. 
HC의 Neptune pool은 영화 스팔타거스(Spartacus, 1960)에도 나온다.
HC의 Neptune pool은 기부를 하면 헤엄이 가능하단다.
HC의 Neptune pool은 푸른 하늘을 내려오게 한 돈의 마력이다.
HC에 도착하면 Rome 시대로 후진한 느낌이 든다.
HC의 본채, Casa Grande는 CA만큼이나 태양이 뜨거운 안달루시아의 세비야(Sevilla) 대성당이 모델이다.
HC의 외관 중 나무 프리즈(Friez)는 한 목수가 30년 동안 공사 중이었다는데 지금은 손을 놓았는지 궁금하다. 
HC의 Assemble room(응접실)은 거대한 Tapestry(직물 공예), 빈틈을 모조리 채운 고풍스런 가구, 소파와 의자 그리고 나무 조각들이 압도한다.
HC의 모든 방들도 외관처럼 유럽의 평행이동이다. 
HC의 도서관은 경치가 좋아 공부보단 잠이 솔솔 올 듯하다.
HC의 Refectory Dining room은 긴 직선, 비싼 Tapestry가 양면을 장식하고 실제로 사용했던 로마의 깃발들이 휘날린다.
HC의 Dining room엔 샘플로 청화백자(靑華白磁) 접시, 왼쪽에 포크 2개, 우측에 나이프와 숟가락 3개, 버터 나이프 그리고 케찹과 겨자가 병째로 있다. 
HC의 영화관 입구의 Billiard room엔 포켓과 케롬(Carom)의 Rainbow 당구대가 있는데 당구공은 슬픈 상아(Ivory)겠지?
HC의 당구대 의자 벽엔 1928년 10만 불을 했다는 수렵 그림의 Tapestry가 있다. 
HC엔 전용 Theater가 있는데 손님들과 Silent 영화를 즐겼을까?
HC의 실내 수영장인 로만 풀(Roman Pool)의 천장과 바닥 타일은 페루 아타우알파의 황금의 방(6.7 x 5.2 x 2.4m)처럼 金장식으로, 타일은 베네치아에서 제작 수입했다.
HC의 로만 풀은 코발트 블루와 황금색이 어우러진다.
HC의 수영장 옥상에는 테니스 코트가 있고, 야간엔 영화 조명기구를 사용했다.
HC는 유럽을 옮겨 온 적통의 후예들 같다. 


3. 내가 싸돌아다니는 이유는?
 나의 고(古)-저택(邸宅) 탐구 습성 중 하나는 안방, Master room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네들의 하루 안식처는 어떤가?
그들의 사랑은 나와 다른가? 참으로 궁금하기 때문이다.
Hearst의 침실! 왕실 풍의 Queen 사이즈 침대도 생각보다 작았고 내부도 소박했고 Single은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저택들 침대는 Double 이었는데... Hearst의 단점... 법적으로만 부부인 주인 거실 옆에 정부의 침실이 있었고 행사 때 본부인이 오면 정부는 나갔단다. 
 Hearst의 침실에 작은 원형 탁자와 침대 그리고 어머니(미국 학부보회 PTA의 창립자)의 사진이 걸려있어 특이했다.
 내가 다녀본 저택들 안방은 작았고, 소박했고,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고, 작은 Double bed였는데 그것은 같이 부대끼며 열심히 찌지고 볶고 살라는 뜻? 그것이 공통점이었다.
 고종(15세)과 민씨(16세) 비의 가례는 운현궁에서 치렀고(1866), 첫날밤을 보낸 방은 참으로 작았다. 우리가 큰 것인가?


4. 지금의 나
 지금의 나는 레스토랑보다 노포가 더 맘 편하다. 
자랑질보다는 같이 함께! 부대끼는 것이 좋다.
삐까뻔쩍 누리던 부호들도 당대뿐인 이유는 무엇인가?
지속되지 않는 부(富)도 인생사의 한 부분이지?
부(Wealth)도 인생사처럼 변수가 많은 것이지?
부의 재편이 우리에겐 눈요기라도 할 수 있는 기회인가?
결국, 돌고 도는 것이 돈인가?
도솔산 산책로의 ‘있으면 금심, 없으면 걱정’이란 표지판이 잊히지 않는다. 참으로 맞지 않나요?
크면 큰 만큼, 양만큼 고민이 생기겠지요? 

나의 천국인 치과에서 퇴근하면 
계룡산 천왕봉이 보이는 흰 욕조로 달려가 
행복의 땀내도 딱딱하게 굳은 영혼도 
씻는 
그곳이 내 행복의 城이다.


송선헌(宋瑄憲) 원장

▲송선헌(치과의사·의학박사, 시인) 약력

대전 미소가있는치과® 대표원장

충남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외래교수

UCLA 치과대학 교정과 Preceptor and Research associate

대한치과 교정학회 인정의

대한치과교정학회 대전 충남지부 감사

2013년 모범 납세자 기획재정부장관상

2019년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장려상과 입상 수상

저서: 임상 치과교정학 Vol. 1(웰 출판사)

전)대전광역시 체조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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