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통령 혼자 민주주의를 망칠 수 있지만, 살리지는 못한다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있는 트럼프 미 대통령. 자료사진.

혼란과 반전의 연속이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그러나 끝난 게 아니다. 바이던 당선인은 정권인수 작업에 들어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승복 없이 버티면서 협조를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부정선거라며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맹신적 지지자들에게 선거결과를 인정하지 말고 집단행동에 나설 것을 선동하고 있다. 미국이 120여년 이상 자랑스럽게 지켜온 민주선거의 전통과 대통령제의 품격은 고스란히 길거리로 내팽겨졌다.

현재 미국은 적과 동지 두 진영으로 나뉜 채 상호비난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이 나라가 진정 민주주의의 종주국이요 대통령제의 모델 국가이었는가에 상당한 의구심과 회의감이 들 정도다. 한바탕 내전같이 치러진 미국 대선이 미국만의 특이한 현상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이념간, 진영간, 지역간, 세대간에 처한 극심한 대립과 갈등이 미국 못지않은 상황에서 1년 반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과연 어떻게 감당할지 불안감과 위기감을 벌써부터 떨치기 어렵다.

트럼프는 정계의 이단아이자 위선과 허풍으로 국제적으로나 국내 반대파들의 단골 조롱 대상이었다. 특히 그의 반민주적 리더십에 의해 활용된 음모론, 가짜 뉴스, 진영논리 등의 반지성과 탈진실의 이른바 ‘트럼피즘’이 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를 망가뜨린 주범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리더 개인의 삐뚤어진 자질과 리더십으로 돌리기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 자유민주 체제의 위기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다.

단지 이 체제의 위기와 균열의 틈 속에 등장한 트럼프가 극단적인 팬덤정치를 통해 예상을 뒤엎고 2016년 대선 승리로 대통령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4년의 집권기간 내내 변칙과 독단, 편가르기와 증오심 부추기기 그리고 깜짝쇼로 일관하면서 미국의 민주체제를 더욱 후퇴시키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는 7천만표 이상의 지지를 받음으로써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존재가 되었다. 그는 그 힘을 앞세워 지금도 미국의 민주주의 규범과 오랜 전통에 어깃장을 놓으면서 은밀한 정치적 거래를 모색 중이다. 미국 정치의 비극이다.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

1830년대 프랑스 정치사상가 토크빌이 미국의 도시들을 돌아보고 난 후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통해 미국의 지방자치와 배심제도, 자발적 결사활동과 타운십 미팅들이 유럽과 차별화된 제도로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고 극찬한 바 있다. 그랬던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가 이렇게 철저히 고장난 실상이 지난 대선과정에서 입증된 것이다.

미국에 뿌리내린 자유민주 체제의 기본틀은 정치적으로 대의제, 경제적으로 시장경제 그리고 사회적으로 개인주의 사회다. 대통령제하의 대의제는 복수정당제, 국민직선, 삼권분립을 전제로 하는 정치제도이다. 이 대의제의 근간인 미국의 정당제도가 그 역사는 길다 해도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해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국민들을 대변할 후보를 제대로 내세우지도 못하는 무력하고 무책임한 정당으로 추락했다.

공화당은 기득권 유지에 급급했고 민주당은 개혁을 주저한 채 그저 선거 승리만을 추구했다. 양당은 지지자들의 극한 대립만부추기다 결국 국민들의 기대와 신뢰를 완전히 저버린 꼴이다. 게다가 미국의 복잡한 대통령 선거제도도 급격한 국내외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수명을 다했다는 평가다.

한편, 미국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20세기 부터 세계경제를 주도하면서 풍요로운 미국을 창조했다. 그러나 탐욕과 약육강식의 정글 자본주의로 전락하면서 불평등은 최고치를 경신해가고 있으며 계층간, 인종간 절제와 양보는 사라지고 불신과 반목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 결과 자유민주주 체제는 서서히 파괴되어 온 것이다.

자유민주 체제는 구 소련 등 막강한 사회주의 체제가 존재했을 때 오히려 더 건강하고 안정적이었다. 사회주의 체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필연적 약점인 자유경쟁의 모순과 인간소외의 비리 문제를 끊임없이 비판했었다. 자유민주 체제는 그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함과 동시에 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자기 수정의 노력을 지속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그 비판이 사라지면서 오만과 우월주의에 빠진 채 이제 역설적으로 체제 존립의 위기를 맡게 된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스스로 자체 수정을 거부하다 이미 붕괴된 사실을 잊은 것이다. 대통령 당선자인 바이든이 치유와 통합이라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기는 하나 민주체제로의 정상적 복원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다.

한국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는가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이 지향한 자유민주 체제도 정상적인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한국의 대의제는 제도만 형식적으로 존재할 뿐이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정당들은 수없이 부침을 거듭하며 평균 수명이 겨우 44개월 밖에 안된다. 책임정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수다.

여야 정당들은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는 동시에 정치 이념과 정강으로 모인 결사체라기 보다 이합집산의 선거용 집합체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민들의 불만과 고통을 치유하는데 여전히 무력하다. 선거는 늘 진영간, 지역간, 세대간 프레임에 갖혀 영혼 없는 선거만 반복해도 유권자들은 말없이 순응한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동일시되어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항상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뒷전으로 밀린다.

더욱이, 시장경제는 경제성장의 열매를 가져다 줬는지 모르지만, 자유경쟁이라는 미명아래 경제적 승자와 패자를 양산한다. 승자는 용이 되어 모든 것을 독차지하지만, 패자는 나락으로 떨어진 채 가재·붕어·개구리가 되어 재기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결국 극심한 사회갈등으로 치닫을 수밖에 없다.

승패가 고착화된 좁은 틈 속에 정권은 공정과 정의를 강조한다. 하지만 진영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말잔치에 불과하다. 후보들도 선거 이전에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슈퍼맨 행세를 한다. 정치권은 늘 다음 대선에서 대통령만 새로 잘 뽑으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듯 국민들을 편 가르고 선동한다. 희망 고문이다. 결국 한국의 자유민주 체제도 비판을 수용하는 수용탄력성과 체제의 약점을 보완하는 수정탄력성을 잃은 결과, 체제의 총체적 위기가 점차 깊어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궁극적으로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미국 국민에게 달려있듯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한국 국민에게 달려있다.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내후년 한국 대선에서는 유권자들과 여야 후보들이 배타적 민족주의,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그리고 혐오와 분노를 조장하는 가짜 민주주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자유민주 체제의 개혁과 정착이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대통령은 혼자 민주주의를 파괴시킬 수는 있어도, 혼자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는 없다는 교훈을 미국과 한국에서 봤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체제를 재정립시키느냐 아니면 사회주의 체제처럼 붕괴되느냐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자유민주 체제 복원을 향한 치유와 통합의 노력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과 국민의 미래가 걸린 운명의 시간들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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