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양승조 충남지사. 자료사진.
양승조 충남지사. 자료사진.

충남지사를 한번 만났으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유도 사정도 각각이겠지만 도지사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주는 게 맞다. 요즘 양승조 충남지사와 면담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 중엔 81세의 장인순 한국원자력연구원 고문도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을 지낸 원자력계 대부요 원로다. 물론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아쉬워하고 비판하는 입장이다. 그는 전남 여수가 고향이지만 대덕연구단지가 들어서면서 1970년대 후반 대전에 와 정년퇴임 후에도 여전히 대전에 살고 있는 ‘확실한 대전시민’이다.

지난 14일 충남도가 마련한 ‘2021년 환경정책자문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충남도의 에너지 정책에 참고했으면 좋겠다며 두 사람의 만남을 충남도 측에 제안했다. 대기오염의 주범 석탄화력발전소를 없애지 못하고 2조4천억 원이나 들여 미세먼지 등의 저감시설을 해도 근본적 대책이 못 된다는 점 때문에 탈원전 얘기가 나왔지만 공무원들에겐 너무나 예민한 문제여서 언급 자체를 꺼렸다고 한다. 그 인사는 도지사라야 얘기라도 해볼 수 있겠다싶어 관계 부서를 통해 장 고문과의 면담을 주선했다. 다른 채널을 통해서도 도지사 측에 이런 제안을 한번 전달했다. 2주가 다 돼 가지만 아직 아무 연락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석탄발전소 폐지 환영하면서도 현실적 대안은 없는 상황

두 사람의 만남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탈원전 정책을 펼치고 있는 정부에서 여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 탈원전에 반대하는 원자력계 대부를 만난다는 것은 부담일 수 있다. 그래도 200만을 대표하는 도지사가 만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충남지사는 충남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에너지정책까지 충분히 파악할 권리가 있다. 책임이기도 하다. 도지사는 원전 관계자도 태양광 관계자도 다 만날 수 있고 만나야 한다. 찬성론자도 반대론자도 만나서 얘길 들어야 문제를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화력발전소(61기)의 절반(30기)은 충남 안에서 운영되고 있다. 환경피해를 충청권 주민들이 가장 많이 보고 있다. 이 발전소를 앞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정부의 문제면서 충남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작년 정부가 보령화력발전소 1, 2호기를 조기 폐쇄하겠다고 밝히자 양 지사는 “도민과 함께 기쁘게 생각한다”며 환영했다. 석탄을 때는 화력발전소가 대기오염의 주범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반응이었다. 

문제는 화력발전소를 줄이면 어떤 발전소로 대체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원자력 LNG 태양광 정도가 대안으로 검토될 만하다. 현 정부처럼 탈원전 정책을 고수한다면 LNG나 태양광을 검토해볼 수 있다. 그러나 태양광은 현실적 대안이 못 된다는 사실이 신재생에너지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독일 등의 사례에서 이미 드러나 있고(2019년3월 KBS 시사기획 창-‘탈원전의 두 가지 시선’), LNG는 비싼 비용도 비용이지만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역대 대통령 모두 만난 과학 원로, 문대통령만 못 만나

화력발전소 폐쇄에 대한 양 지사의 환영에 아무 문제가 없으려면 현실적인 대안이 있어야 한다. 탈원전의 조건에선 대안이 없는 상태다. 양 지사 입장은 뭔가? 그건 도지사인 내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인가? 충남지사는 도내 화력발전소만 신경쓰면 되지 태양광이나 원전 같은 문제는 도지사가 알 바 아니라는 것인가? 만약 생각이라면 양 지사는 대권예비후보 이재명 경기지사가 요즘 기본소득(30만원) 주장을 하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지사가 쓸데없이 나랏일에 참견하는 것 아닌가?

양 지사에 대해 ‘충남 대권주자’로 평했다는 조길연 충남도의회 부의장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면 양 지사는 장 고문과의 면담을 꺼려선 안 된다. 국내 화력발전소의 절반을 보유한 충남은 에너지 문제에 관한 한, 정부의 정책에 적극 참여할 권리가 있다. 도지사는 원전 문제든 태양광 문제든 정부 관계자 이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장 고문도 만나고, 물론 반대 측 전문가 말도 들어본 뒤에 탈원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도지사로서 정부에 건의해야 한다. 민선 도백이 과거 관선과 다른 점이다.

원전 문제는 찬성이든 반대든 그 이유가 각각 100가지도 넘을 것이다. 양쪽 얘기를 충분히 듣지 않으면 편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필자의 이 기사도 편견에서 자유롭다고 장담하진 못한다. 도지사처럼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은 달라야 한다. 그 분야 종사자나 전문가를 만나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장인순 고문은 우리나라 원전 분야의 종사자였으면서 최고 전문가다. 우리나라 원전기술을 세계 1등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과학자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박정희 이후 역대 대통령 모두가 그를 만났다고 한다. 그가 유일하게 만나지 못한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뿐이다.

역대 모든 대통령들이 찾았던 한 원로 과학자가 지금 ‘일개 도지사’와의 면담조차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모습은 작금 대한민국 원자력계의 처지를 말해준다. 과학에 대한 대우의 수준이기도 할 것이다. 원전 종사자들은 세계를 호령하는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도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신세가 되어 있다. 세계 300조 원전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기업이 도리어 정부에 1조원의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탈원전은 국가 간 에너지 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만의 희생으로 끝나지 않는다. 종당에는 막대한 국가적 국민적 피해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더 문제다.  

대덕특구 둔 대전 출신 국회의원들 외면에 눈물

‘탈원전’이라는 정책 하나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때문에 대통령은 못 만나더라도 국회의원이나 시도지사를 만나서라도 사정하고 매달려 보려는 게 원로 과학자의 간절한 심정이다. 그는 대덕특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이상민 의원 등 지역 국회의원들에게도 “다른 의원들은 몰라도 대덕특구가 있는 대전 국회의원들은 탈원전의 문제점도 위에 전달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하소연한 바 있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장 고문은 지난 총선 때 이런 소식을 듣고 찾아간 야당 후보들에게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고 있는 게 한탄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대참사를 겪고도 원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도 공화당과 달리 원전에 반대해온 민주당까지 원전을 청정에너지로 인정하면서 원전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보도가 최근 나왔다. 중국은 앞으로 원전 100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주로 (중국의) 동해안에 건설되기 때문에 원전 사고가 나면 우리가 피해를 볼 것으로 우려되지만 장 고문은 그런 걱정은 하지 않고 있다. 원전은 폭발 기술이 아니라 폭발력을 제어하는 기술이 핵심인데, 이 분야에서 우리 기술이 세계 1등이며 중국도 우리 기술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세계 원전시장의 1등 자리는 중국에 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장 고문의 전망이다. 중국은 후발 주자지만 정부 지원이 강력해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중국에서 우리 임금의 3배에 5년치 선불 조건으로 모셔가려 대상이 우리 인력이라고 한다. 아직은 넘어가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 원전이 끝내 망가지고 만다면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해도 말릴 명분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5000만의 미래를 걱정하는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면 누구라도 - 탈원전 찬성이든 반대든 - 장인순 고문을 찾아서 만나는 게 정상 아닌가? 벌어지는 광경은 완전히 반대다. 도리어 여든이 넘은 과학계 원로가 도지사의 면담을 간절히 원하면서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나라인가? 지금 여당 정치인으로 장 고문을 안 만나는 것은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못 만나는 것이다. ‘탈원전’ 얘기만 나와도 공무원들이 화들짝 놀라 입을 닫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양승조 지사는 달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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