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노동연구원 김태호 초빙연구위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 대한민국 직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1.8%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답했다. 마땅한 후속 조치를 하지 않은 회사를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법의 맹점 때문이다.

가장 모범적이어야 할 공공기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직원들의 감사 요청을 묵살하거나 신고 피해자에 오히려 부당한 인사 조치를 내린 사례도 빈번하다. 직장에서 떠나게 되는 사람은 오히려 피해자인 셈이다.

수 년 째 지속되고 있는 세종시 공공기관 직장 내 괴롭힘 사례를 통해 조직 내 2차 피해, 미온적 후속 조치 등 갑질 문화 개선이 어려운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세종시 반곡동에 위치한 국책연구단지 전경.
세종시 반곡동에 위치한 국책연구단지 전경.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해서는 개인 간 갈등이라는 인식을 넘어 조직 문화 차원에서 다각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김태호 초빙연구위원은 지난달 15일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법학회 공동 주최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 1주년 토론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조직행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발제했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조직이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는 게 골자다. 시대 변화나 세대교체 차원에서 보면, 괴롭힘 문제 해소가 결국 '일 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김 연구위원은 인사·조직 분야 연구를 해왔다. 최근에는 직장 내 괴롭힘이 조직 행태나 고용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를 만나 괴롭힘 문제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들여다봤다.

다음은 김 연구위원과 나눈 일문일답.

ㅡ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주년을 맞이했다. 최근 토론회에서 조직 차원에서 바라본 직장 내 괴롭힘 에 대한 발제를 했는데.

“토론회 발제 내용은 이미 이뤄진 선행연구 결과를 토대로 했다. 본 연구는 현재 진행 중이다. 국내에 괴롭힘 발생이 조직이나 고용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수치화된 연구 자료가 많지 않다. 다만, 이전 연구 결과를 통해 나름의 논리 구조를 만들어볼 순 있었다.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집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합리적으로 예측할 순 있다. 하지만 정확히 수치화하기는 사실 어렵다. 각각의 사람들이 처한 환경이나 특성, 받는 영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연구 과정에서 어떤 경향성을 도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ㅡ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법 제정 문제를 넘어 조직이나 인사 차원에서 연구돼야할 필요성은 어디에 있나.

“직장 내 괴롭힘 직접 경험자가 아닌 간접 경험을 한 경우도 업무상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은 단일의 피해자 뿐 아니라 괴롭힘이 존재하는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된다.

상담 사례를 살펴보면, 직장 내 괴롭힘은 특정 직종에 편중되지 않고 정규직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났다. 일의 성격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퇴직했거나 퇴직을 고려중인 경우보다 재직 중인 경우가 더 많았다.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장의 변화가 없다면 크고 작은 피해가 계속 될 수 있다는 얘기다.”

ㅡ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가늠할 수 있나.

“2000년대 이뤄진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이 조직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피해자는 스트레스가 높고 소진(burn out)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낮은 직무만족도를 보이거나 잦은 결근을 할 가능성이 있다. 조직에 대한 신뢰가 낮아져 조직성과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변 동료의 피해를 목격하거나 동조하는 경우, 자신 또한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 두려움 때문에 조직 몰입도가 낮아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문제 발생을 조직 차원에서 은폐하려는 경우, 조직 내 공정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돼 이직률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괴롭힘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나 제도적 해결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경우, 파괴적인 조직 문화를 생성할 가능성도 높게 나타났다.”

ㅡ 직장 내 괴롭힘 이후 또 다른 문제로 2차 가해·피해 등도 언급된다.

“결혼이나 가족 부양 등 괴롭힘을 당해도 도망가거나 회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신고를 하지 못하는 이유도 직장에 계속 다녀야하기 때문이다. 신고 후에도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거나 괴롭힘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킨 자로 낙인 찍힐 수도 있다. 간혹 신고자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인사조치가 내려지는 경우도 있어 괴롭힘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권위적인 문화, 넓은 권력거리, 집단주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도태되거나 힘들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원하지 않아도 충분히 방관자의 입장에 서게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사람들은 곧 간접 피해자로 지칭된다.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케어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노동부에서 제작한 직장 내 괴롭힘 대응 매뉴얼 책자 표지. (사진=노동부)
노동부에서 제작한 직장 내 괴롭힘 대응 매뉴얼 책자 표지. (사진=노동부)

ㅡ 최근 여러 사례를 보면, 정부 지침을 선도적으로 따라야할 공공기관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문화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이다. 이직이 쉽지 않다. 구성원들의 근속년수도 길고, 직원들의 연령 스펙트럼도 상당히 넓다. 상급자들은 이전 세대, 하급자는 새로운 세대다. 두 세대 간 문화나 가치가 충돌해 발생하는 괴롭힘도 나타난다. 이 경우 선과 악, 징벌적 차원의 논의보다는 조직문화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공공기관의 경우 상대적으로 정부에서 통제하기 수월하다. 기관평가 항목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요소를 포함하거나 정부 지침 등을 권고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적으로 사람들의 인식 변화로 이어지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ㅡ 소규모 사업장이나 중소기업에서는 더 다양한 사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소규모 사업장 내에 문제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민간 기업에 직접 개입해 통제하기 어려운 구조다. 쉽게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업종의 경우는 더하다. 정규 과정을 거쳐 일해 온 사람들과 흔히 말해 연줄을 갖고 온 사람들 간의 권력 차이 등도 공공기관 보다는 많다.

일정한 임기가 있어 기관장이 바뀌게 되는 공공기관의 경우, 변화 가능성이 오히려 클 수 있다. 기관장이 쇄신 의지를 가진 사람이면 조직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사업주가 바뀌기 어려운 민간 기업과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ㅡ 최근 몇 년 사이 직장 갑질을 소재로 한 충격적인 사례가 잇따라 보도된 바 있는데.

“조심스러운 점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자극적으로만 보도되고 있다는 부분이다. 괴롭히는 자와 괴롭힘 당하는 자 간의 자극적 내용들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데, 남은 사람들의 시각에서 문제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에 대한 후속 고민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문화 개선이 요원할 수 있다.”

ㅡ 마지막으로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의 말을 한다면.

“아직도 괴롭힘에 대한 정의나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우선적으로 사람과 사람 간 하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상호존중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이런 조직 차원의 연구가 기업, 사업주 마인드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조직을 작은 사회로 보면, 다양한 구성원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들도 이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가 진행돼 여러 처방이 함께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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