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세종형 도시재생, 제대로 가고 있나 ④
전의사회적협동조합 천영옥 이사장 인터뷰

2009년 용산 참사 이후 도시 패러다임은 개발에서 ‘재생’으로 전환됐다. 도시 방향성은 서울시를 시작으로 소유자 위주에서 거주자 중심으로, 철거 중심에서 회복 중심으로 변모해왔다.

11년 간 정권이 두 번 바뀌었다. 그동안 도시재생은 문화재생, 뉴딜사업으로 확장됐다. 재개발 대신 삶의 터전으로서의 도시를 회복하고자 하는 지금, “여기 사람이 있다”는 용산의 외침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주민과 행정, 전문가는 도시재생을 이끄는 3주체다. 행정이 편의주의, 성과주의에 매몰될수록 재생은 본질에서 벗어나기 쉽다. 전문가들의 편협함은 공장식 도시재생 성과를 찍어내고, 부동산, 생계와 연관된 주민들의 욕망은 이해관계에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출범과 함께 대규모 도시개발이 지나간 자리. 세종시 원도심에 문화·도시재생을 둘러싼 잡음이 나오고 있다. 11년 전 용산의 그들이 묻는다. “여기, 사람이 있습니까?” <편집자 주>

천영옥 전의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천영옥 전의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세종시 북부권 끝자락으로 가는 길목, 615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사는 전의면이 있다. 세종형 도시재생 사업 대상지 중 가장 이상적인 주민 조직을 갖춘 곳이다.

오래된 역사(驛舍) 전의역 앞, 새로 지어진 ‘전의 홍보관’이 아침 일찍 문을 연다. 지난해 1월 설립된 전의사회적협동조합(이하 전의협동조합)이 올해부터 운영을 맡은 시설이다. 

마을 주민들과 전의를 사랑하는 시민 55명이 조합원 자격을 갖고 있다. 협동조합 이사장은 지역 예술 작가 천영옥 도예가가 맡았다. 

“여기, 사람이 있습니까?”에 대한 응답. 차곡 차곡 충분한 역량을 쌓아온 주민들이 도시재생 사업의 중간 조직을 맡아 진짜 도시재생을 이끌고 있다.

전의협동조합 사무실이 위치한 전의홍보관에서 천영옥 이사장을 만났다. 대규모 예산이나 민간 투자 유치, 출중한 용역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들어봤다.

비영리 법인 설립, 조합원 모집 외부 개방

이달부터 전의협동조합이 운영을 맡은 전의홍보관 전경.
이달부터 전의협동조합이 운영을 맡은 전의홍보관 전경.

전의홍보관은 지난해 10월 준공됐다. 전의협동조합이 이달 운영을 맡았다. 전의협동조합은 지난 2017년 본격적인 창립 준비를 시작해 지난해 1월 설립 허가를 받았다. 현재 55명의 조합원이 가입돼있다.

홍보관에는 전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 홍보·판매 코너가 마련돼있다. 한쪽 선반에는 마을기자들이 직접 발간한 ‘전의다움’ 신문도 비치됐다. 1층 카페에서는 생과일주스, 발효 식초 음료 등 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제품으로 만든 음료를 판매한다.

전의를 담은 캔들, 금사리 분청사기, 쪽빛 천연염색, 왕의물김치 담그기, 전의 골목여행 등 체험 활동도 안내받을 수 있다.

전의 주민들은 지난 2015년 농림부 농촌중심지활성화 사업을 계기로 주민 조직 필요성을 절감했다. 주민들은 이후 세종시도시재생지원센터 도시재생대학을 통해 역량을 키워나갔다.

천 이사장은 “지역 내에서 발생하는 일 중에 주민들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고, 관에서 해결해줬으면 하는 문제도 있지만, 직접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함께 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모였다”며 “초기 컨설팅을 받을 때는 영농조합 설립을 추천받았으나 비영리 협동조합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마을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한다는 공공성이나 사업이 변질되지 않았으면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의협동조합에는 대부분 지역 주민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했으나 거주지 기준을 두지 않고 모집하고 있다. 전의라는 마을에 매력을 느낀 동지역 시민들이나 지역 예술인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천 이사장은 “지역 기준을 두지 않고, 협동조합에서 나온 수익은 다시 전의라는 지역에 국한해 사용하는 것에 동의하는 분들이라면 환영하고 있다”며 “내실을 다지고 협동조합 운영 능력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외부 자원도 큰 도움”이라고 설명했다.

도시재생 사업 중간조직 역할 톡톡

전의협동조합 제1회 정기총회 모습.
전의협동조합 제1회 정기총회 모습.

전의협동조합은 현재 전의면 읍내리 뉴딜사업 현장지원센터 운영을 맡고 있다. 2018년 국토부 공모에 선정된 ‘그린 전의’ 뉴딜사업은 오는 2022년까지 총 20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대규모 재생 사업이다.

전의 지역은 유서 깊은 조경수 생산 지역이라는 특성을 반영, 지역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 등을 목적으로 뉴딜사업이 진행 중이다.

시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역량 있는 주민 조직이 사업 중간 조직 역할을 수행하는 사례가 사실 가장 이상적이나 흔치 않다”며 “탄탄한 주민 조직이 이미 갖춰진 경우, 중간 용역사를 거치지 않고 주민들이 사업을 직접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전의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대규모 사업비가 투입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경우 타 지역 외부 용역사가 들어와 사업을 추진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과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고, 지속성을 갖지 못한 채 사업이 마무리 되는 문제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천 이사장은 “용역사와 관에서는 가질 수 없는 진짜 영향력은 결국 주민들으로부터 나온다”며 “또 조합원들 개인이 각각의 능력을 갖추고, 누군가의 돈벌이가 아닌 마을에 환원한다는 목적으로 뭉치면 사업이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어촌 뉴딜 사업의 경우 사람과 주민 조직이 없어 굉장히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도시재생 사업은 결국 사람이고, 그 사람들이 이곳에 1년이든 10년이든 정착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협동조합 운영을 통해 발생한 수익은 주민 역량 강화 사업 등으로 쓰인다. 찾아가는 마을대학, 공연·전시 등 문화예술 행사, 돌봄 등 마을교육공동체 운영, 평생교육사업 등이 그 예다.

천 이사장은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결국 대상지가 정해져있고, 그곳에 거주하지 않는 주민들은 사업이 남의 일이 될 수 있다”며 “이런 생각을 방지하기 위해 사업 중심지에서 나온 수익을 다시 바깥으로 확산한다. 올해도 찾아가는 마을대학 사업비 일부를 조합 수익으로 충당했다”고 말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마을

제2회 전의골목문화축제 현장.
제2회 전의골목문화축제 현장.

천 이사장은 전의초와 전의중을 졸업했다. 전의는 그의 유년시절이 담긴 곳이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마쳤고, 결혼 후까지 타지생활을 했다. 지금은 다시 가족들과 고향으로 내려와 작업실을 열고,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마을’이 천 이사장의 꿈이다. 어른은 아이를 돌보고, 또 아이들이 반대로 어른을 돌보는 곳.

천 이사장은 “단순히 전의협동조합이 아니라 직원이 6000명인 회사를 운영한다고 생각한다”며 “마을 안에서 자기 능력에 맞는 일을 해 수익을 창출하고, 관계를 이어가고, 일거리를 얻는 것, 전의사회적협동조합이 주민 모두를 아우르는 복지 회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전의초 앞에 건립 중인 청소년문화센터 운영도 준비하고 있다. 조합을 통해 구성된 또다른 주민 조직이 센터 관리와 프로그램 운영 등을 맡을 계획이다. 구성원들은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으로 이미 기반을 닦아왔다.

천 이사장은 “도시재생, 주민 조직 관련 견학이 잇따르고 있다”며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도시로 나갔을 때 ‘아, 내가 참 좋은 마을에서 살며 보호받았구나’하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또 이를 내면의 에너지로 삼아 베풀 수 있는 아이들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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