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 대한민국’의 위기
‘공화국 대한민국’의 위기
  • 김학용
  • 승인 2020.06.05 11: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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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용 칼럼]

국회 의사당 전경.

‘공화(共和)’라는 말은 꽤 익숙한 용어다. 박정희 때 집권당이 민주공화당이었고, 3김 시절 김종필 씨가 만든 당 이름은 신민주공화당이었다. 이런 당 이름을 모르는 신세대라도 미국에 공화당이 있다는 것은 알 것이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이다. 우리나라에선 ‘공화’보다 ‘민주’의 인기가 더 높다. 현대정치사를 돌아보면 공화는 빠지더라도 민주라는 이름이 당명에서 빠진 때는 거의 없던 듯하다. 지금 여당 이름도 더불어‘민주’당 아닌가?

현대 정치에서 사용 빈도를 보면 ‘민주’가 앞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화’도 만만치 않다. 각 국이 정체(政體)를 표현할 때 민주는 빠져도 공화는 반드시 들어간다. 입헌군주제인 일본 영국을 제외하고, 미국(연방공화국) 프랑스(공화제) 독일(연방공화제) 북한(공화제) 중국(인민공화제) 러시아(공화제)의 경우도 ‘공화제’를 표방하고 있다. 정체에 민주까지 넣은 나라는 우리뿐이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하여 민주와 공화를 함께 쓰고 있다.

‘민주’ 뒤에 따라붙는 ‘장식용 공화’(?)

정체(政體)란 통치 형태다. 군주제냐 귀족제냐 민주제냐 공화제냐를 구분하는 말이다. ‘공화’는, 모든 나라가 정체로 삼을 만큼 중요한 정치 개념임이 분명하지만 공화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그렇지 않은 편이다. 민주 국가에서 정권이 독재 행태를 보이면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저항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외치기도 한다. 이때 방점은 ‘민주’에 있고 ‘공화’는 민주 뒤에 그저 따라붙는 뉘앙스다. 

‘공화’는 ‘민주’에 버금가고 때론 그 이상 중요할 수도 있는 개념인데, 현실 정치에서는 그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라는 말에 의례적으로 따라붙는 접미사 정도로 취급된다. 정치인도 국민들도 ‘공화’에 대해선 크게 인식하지 않는 것 같다. ‘민주’에 비하면 ‘공화’의 개념은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고, ‘공화 정치’에 대한 의무감도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화(共和)’의 사전적 의미는 ‘두 사람 이상이 화합하여 정무(政務)를 시행한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는 정견을 달리하는 여러 정파가 있을 때 어느 한쪽 세력이 독단으로 결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나라 일을 공화제에 맞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기관이 의회다. 의회는 공화제 실현을 위한 필수 기관이다. 의회를 두고 있어도 특정 세력의 단독 결정이 잦으면 공화정치가 아니다. 국회 날치기는 전형적인 반(反)공화 정치다. 

‘민주’라는 말에는 국가 권력을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이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가 행사한다는 의미만 있을 뿐, 국민들이 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는지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민주’만으로는 의회가 필수 기관이 아니다. 이 때문에 간접 민주주의 대신 직접민주주의가 주창되기도 한다.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기 때문에 다수의 결정이 최종적이며 정의가 된다. 다수결 원리는 민주주의 명분이면서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공화’ 빠지면 ‘민주’도 불가능한 이유

“다수가 곧 정의”라는 공식이 인정되면 대중영합주의 즉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정말 국민과 국가를 위하는 정치인보다 정치꾼이나 선동가들이 권력을 잡는 경우가 자주 생기면서 중우정치로 빠지게 된다. 나치 독일도 민주주의의 이런 약점을 이용한 것이고, 베네수엘라 등 쿠데타가 끊이지 않는 남미 국가 국민들도 민주주의를 표방한 포퓰리즘의 희생자들이다.

‘공화’가 빠진 ‘민주’는 너무 허술해서 독재의 명분과 수단으로만 이용되기 십상이다. 공화는 진정한 민주를 위한 필수 장치다. ‘공화제’란, 가령 마을 주민 100명이 함께 하는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무조건 다수 의견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소수 의견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찾아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의견이 60명 대 40명으로 갈렸을 경우 60명의 의견만 쫓는 게 다수결 원리라면 다른 40명 의견까지 반영하여 ‘100명 전체’를 위한 방안을 찾는 게 ‘공화’다. 100명 전체를 위한 정치를 모토로 삼는 사람들이 공화주의자다. 우리 편만 이기고 상대는 무조건 죽이라고 외치는 작금 대한민국에서 공화주의자는 왕따가 되어 쫓겨나기 일쑤다. 

‘민주’는, 국가 권력이 국민에게 나온다는 뜻이며, ‘공화’는 그 국가 권력이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만을 위해서 쓰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공정한 투표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 나라라면 ‘민주 국가’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대통령과 여당이 특정 정파만을 위해 권력을 행사한다면 ‘공화국’은 못된다. ‘공화’를 포기한 ‘민주’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될 수 없음을 많은 ‘가짜 민주 국가’들이 증명하고 있다. 

‘다수’만 쫓으면 민주주의 아닌 ‘폭정’

국회 의석 60%를 점유한 여당이 상임위원장 자리 모두를 갖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야당과 원구성 합의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의장 선출 등 원구성을 밀어붙이고 있다. 관련 규정이 없는 만큼 법적으론 문제될 게 없으나 ‘공화제’와는 거리가 있다. 60%로 밀어붙이면 못할 게 거의 없고, 다수결 원칙을 명분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이를 인정해주고 지지하는 국민들도 꽤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다수라는 힘만 갖고 밀어붙이는 건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r majority)’으로 가는 길이다. 모든 민주국가가 ‘민주’가 아닌 ‘공화’를 정체로 내세우는 데는 다수의 폭정을 거부한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선 51%를 얻어 당선된 사람이라도 대통령 권한의 100%를 갖는 게 마땅하다. 49%를 얻은 사람에게 49%의 권한을 양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회 권력은 얼마든지 배분이 가능하다. 타협과 조화가 가능한 데도 다수의 힘으로 독식하면 공화제의 파괴다. 위원장 자리 독점이 앞으로 뭐든 여당 맘대로 다 하겠다는 뜻에서 나왔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헌법조문에서 ‘공화’는 떨어져 나가고 만다. 대한민국이 껍데기만 민주인 가짜 민주국가로 갈지 여부는 무엇보다 여당이 60%의 힘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다.

2018년 이코노미스트는 2007년 금융위기 이후 12년 간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가 후퇴한 국가가 89개국에 이르고 향상된 국가는 27개국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그 민주주의 퇴보 현상의 특징으로 4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국가적 위기 사태에서 국민은 조속한 위기극복을 약속하는 카리스마형 지도자에게 표를 준다. 둘째 이렇게 집권한 지도자는 쉴새없이 가상의 적을 만들어 공격한다. 셋째 집권세력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막는 기관들(특히 사법부)의 발을 묶거나 거세한다. 넷째 언론을 장악해 여론을 조작하거나 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 국민이 그를 권좌에서 몰아내기 어렵게 만든다.(『민주주의는 만능인가-김영평 등 저』)

이런 현상을 특이한 일로 보긴 어렵다. 민주주의 자체가 지니는 취약성 때문에 미국 2대 대통령 애덤스는 “민주주의는 영속되는 법이 없다. 이제껏 자살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없다”고 말한 바 있고, 하버드대 교수 레비츠키도 “민주주의는 군사 쿠데타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에게 의해서도 무너진다”고 했다. ‘공화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얼마나 안전한가 묻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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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녀 2020-06-06 15:29:59
민주공화제가 위태로워지는 것은 제1 다수당만의 책임이 아니라 제2다수당의 책임이기도 하다.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면 안되고 서로 조금식 양보해야 한다.

여당은 제1야당에게 상임위원장 자리를 6~7개 주고
프로농구, 프로배구 선수 드래프트 하듯 상임위위원장 자리를 배분해야 한다.

제1당이 먼저 원하는 상임위원회 하나를 선택하면 제2당이 하나를 선택하고
다음에 제1당이 다시 하나를 선택하고 다음에 제2당이 하나를 선택....

이렇게 하면 되는데 그런 합의를 못하니까 매번 저 짓거리들....

지나가다 2020-06-05 20:14:21
가짜 민주국가로 가는 시작이 되는거 같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