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문명의 원천, 나일강
이집트문명의 원천, 나일강
  • 조성남 前 중도일보 주필・대전역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20.05.1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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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파라오와 피라미드의 나라, 이집트 기행④

나일강 건너편에 조성된 신전들은 하나같이 큰 규모다.

“이집트란 나일강이 흐르는 곳이며 이집트인이란 나일강의 물을 마시는 자이다." (아멘신화 중에서) 

이 구절은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이 마련한 이집트 문명전 도록의 첫머리에 나오는 대목인데 이집트 기행을 하면서, 또 다녀와 이집트 관련 자료를 보면서 나일강의 선물이 이집트문명이란 점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번 여행 중 2월3일 낮에 아스완(Aswan)에 도착 후 크루즈에 승선해 2월6일 홍해변의 후루가다에 도착하기까지 3박4일간을 나일강을 운행하는 크루즈에서 보내며 나일강변의 여러 도시에 있는 이집트 고대문명지를 돌아보았다.

우리 일행이 승선한 이 크루즈는 대형으로 거의 최고급 호텔 수준이었다. 이 크루즈에서 바라본 나일강 변의 풍경은 평화롭고도 아름다웠고, 멀리서 보이는 신전들은 신비한 느낌마저 주었다. 이집트의 나일강은 강이었지만, 마치 이집트 전체를 관통하는 움직이는 도로처럼 느껴졌다. 이집트에 와서 왜 크루즈를 타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일강을 더 알고 싶어 이런저런 자료들을 보게 되었다.

나일강  유역의 유적지를 항해하는 대형 크루즈 선박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세계적인 추리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나일강 살인사건’도 크루즈선이 주 무대이지만, 나일강과 관련된 여러 자료를 보면 나일강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저 멀리 빙하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하 내용은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이희준 옮김 「인류의 선사문화」2000), 사회평론, 180-182쪽에서 인용한 것이다.) 

빙하시대 말기동안 나일강 유역은 사냥감, 물고기, 야생식료가 넘치는 서식처였고, 1만5천년 전 이후로는 야생곡류가 식단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 나일강 유역은 물의 공급이 그 지역의 강우가 아니라 에티오피아의 최상류에 모인 빗물이 일으키는 홍수에 달려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 해마다 일어나는 홍수의 변덕은 하류의 인간 거주 유형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반복되는 강우량의 불규칙한 변화는 야생 식량자원을 아주 신중하게 다루도록 만들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원전 6000년 나일강 유역에 10여개 마을

B.C 6000년이 되면 나일강 유역에는 10여개의 농경 마을이 번성했고, 그로부터 1천5백년이 지나 유역주민들은 나일강 유로 가까이 메림다 베니 살라마(Merimda Beni Salama) 같은 작은 마을들에서 거의 전적으로 농경에 의지하며 살았으며 이런 마을들이 결국 그 후 고대이집트왕국의 시원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 고왕국 이전의 왕조가 B.C 3천150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볼 때 나일강 유역의 농경지와 또 나일강에서 넘쳐나는 각종 해류와 조류 및 동물들은 풍부한 식량자원이 되었을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중앙집권적인 통치체계를 갖추면서 이집트의 고대왕국이 강성해지고 또 태양과 나일강에 대한 경배의식이 신적인 숭배로 이어졌으며 동시에 높은 문화적 상상력이 발휘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콤옴보신전 옆에 있는 악어박물관. 마치 살아있는   악어처럼 보인다.

실제로 카이로의 이집트박물관에서 본 옛 회화에는 나일강의 갈대와 새, 나일강변이 선명히 그려져 있었고, 콤음보신전을 보고 나오면서 이 신전 옆에 있는 악어박물관을 관람했는데 이 박물관에는 많은 악어미라가 전시돼 있었다. 인근 나일강에서 잡아 만든 이 악어 미라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주 오래된 한 악어미라는 그 길이와 크기가 대단히 커서 공포감마저 느꼈다. 인근 콤옴보신전에는 악어의 머리를 한 소벡 신이 모셔져 있기도 하는데 옛 이집트인들은 이 악어를 다산과 풍요의 신으로 숭상했다고 한다. 

나일강의 길이는 6671km(또는 6690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강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엔 아마존강이 더 길다는 조사 자료도 있다) 나일강의 발원지부터 지중해로 빠지는 위치까지 지도에서 보면 이집트를 관통하는 기다란 모습을 하고 있고, 사하라 서부사막과 아라비아 동부사막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주목하는 나일강의 진면목은 뭐니 해도 기원전 2925년 이집트의 첫 통일국가가 세워진 후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대왕에게 나라를 빼앗길 때까지 거의 2천6백년 가까이 수많은 왕조가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나일강 유역에 남긴 신전과 파라오의 무덤등 숱한 문화유산이다.

필자가 이집트를 찾았을 때도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이 룩소르등의 신전을 둘러보고 있었고, 그 수가 너무 많아 에드푸신전에서 일행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나일강의 양안은 지금도 한쪽은 황량하고 한쪽은 풍요로운데 고대 이집트 왕국 역시 나일강의 서쪽 즉 해가 지는 쪽은 죽음의 영역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또 파라오의 권위가 떨어지는 때는 농사가 흉작이 되었을 때로 파라오의 신적인 능력이 한계를 나타내 백성들의 신뢰를 상실했다고 하니 나일강은 이래저래 이집트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앞서 나일강의 크루즈를 탄 일정을 소개했는데 이 크루즈를 탈 수 밖에 없는 것이 아스완부터 아무심벨, 콤옴보, 에드푸, 룩소르 등 옛 이집트왕국의 신전과 문화유적이 서 있는 지역이 대부분 나일강 변에 접해 있기 때문이었다.

나일강의 풍부한 물로 인한 많은 농경지는 이집트에 부를 가져다  주었다.

나일강 따라 아부심벨 등 많은 신전 조성

사족인데 지금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는 자칫 전운이 감돌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로 에티오피아가 15년간 저장할 수 있는 댐을 건설 중인데 상당부분 공사가 진척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댐이 완공돼 계절성 폭우가 이집트의 나일강까지 가지 못하게 되면 이집트에는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필자 일행은 아스완하이댐도 둘러보았는데 이 아스완하이댐은 옛 나세르대통령이 시작해 (1960년) 1971년 완공되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댐이라기보다는 호수와 바다처럼 지평선 끝까지 물이 차 있었다. 여기에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 왔는데 이 댐이 건설되면서 옛 고대 이집트의 숱한 문화유적들이 물에 잠기거나 그럴 위험에 처해 있다.

이에 이집트 정부의 요청으로 유네스코가 람세스2세 신전을 지금의 아부심벨로 옮겨놓았고, 또 필라 신전의 아름다운 건축물 역시 어려운 공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 유적에 대한 보존 노력을 보면서 또 한편으로 옛 문화유적은 어느 나라에서든 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인간의 삶과 역사가 그리 허망하다는 허무감도 밀려왔다.

나일강에 지는 석양을 보면서 문득 인류의 문명이 추구해온 본질은 무엇이며 또 그 문명의 운명은 마치 흐르는 나일강처럼 멈추지 않고 이어지면서 명멸한다는 상념에 잠겨 보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영혼 불멸을 믿는 여러 신전의 부조를 보면서 영원한 삶이 가능한 것인지를 곱씹어 보면서 잠을 좀처럼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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