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김경훈 방송인.

맹자 삼락(三樂) 중의 세 번째가 ‘인재를 가르치는 기쁨’이라 했던가. 나는 얼마 전 이걸 실감 했다. 연말이 다가오며 마음은 더 괴로워졌다. 열심히 썼지만 금년에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으니까. 슬픈 것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끝도 없는 깊은 곳, 캄캄한 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떨어지며 머리와 어깨가 돌부리에 부딪혀도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차분히 앉아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지를 들여다봤다. 문제는 두 개였다. 내 과목보다 전공과목에 충실 하라는 의도였다. 첫 번째 문제는 ‘선출직 공무원의 자격’이었고, 두 번째 문제는 ‘극단적인 이념대립의 해결방안’이었다. 이곳저곳에서 고민한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가끔 악필을 만나기라도 하면 눈알이 빠질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학생들이 한 시간 넘게 공들여 쓴 것에 비하면 읽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어? 눈에 띄는 답안지가 나왔다. 나는 그 여학생의 글씨를 오랫동안 들여다봤다. 이제 곧 졸업을 앞둔 4학년이었는데 몇 개의 문장이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대개의 경우 학생들의 답안지는 학점을 따기 위한 달콤한 말을 적었지만 그녀는 진심이 담겨 있는 말을 적어 놓았다. 뭔가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다른 학생들과 다른 것. 그것은 괴로움의 늪에 빠진 나를 꺼내주었다.

‘이번 착한강의 에세이 공모전에 교수님에 대한 수업을 제출했는데, 제 글이 대상으로 뽑혔어요.’

아아아, 마이크 테스트처럼 감탄사가 터졌다. 여학생의 기쁨이 내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다. 내 수업이었으니 당연히 영광스럽지 않겠는가. 나는 채점을 멈추고 여학생이 학기 중에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봤다. 그녀는 강의실에 남보다 일찍 왔고, 필기가 없는 수업이었음에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적었다. 게다가 수업이 끝나면 뒷모습을 정돈하는 사람처럼 의자를 반듯하게 밀어 넣고 나갔다.

나는 여학생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 오십 년을 넘게 살아오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지만 괴로움이 더 많았다. 그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고 폭력이었다. 삶은 폭력적인가? 나는 ‘매우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수 천 킬로나 되는 만리장성을 한낱 사람에게 맡긴 진시황의 폭력을 욕했다. 그래서 나는 염세주의자가 되어 갔다. 때론 두 얼굴을 가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상은 괴로움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것과 총량에서 볼 때 고통이 그동안 더 많았으니까 이젠 그 반대쪽으로 추가 기울어 질 거라고 믿는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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