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문재인 대통령. 자료사진.

요즘 필자가 개인적으로 듣고 있는 내년 총선 판세는 대체로 여야 반반이거나 여당 우세다.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여당 우세가 현실이 되기 위해선 대통령이 깨야 할 기록이 하나 있다. ‘중간선거의 대통령 전패 기록’이다. 대통령 임기 중반에 실시되는 선거는 대통령의 업적과 공과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띠기 때문에 중간선거로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절반을 넘겨 실시되는 내년 총선은 명실상부한 중간선거다. 중간선거에선 집권당이 죽을 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판세가 우세하더라도 대통령과 여당에겐 걱정되는 부분이다. 

미국 중간선거 여당 승리 비율 20~25%

2차대전 이후 미국에선 중간선거가 19번 있었다. 하원의 경우, 이 가운데 집권 여당이 승리한 경우는 5번(26%)에 불과했다. 그 중 의석수를 늘리면서 이긴 경우는 단 한 번뿐이었고, 나머지는 4번은 이기기는 했으나 의석수가 줄었다. 중간선거에서 여당은 평균 26석을 잃으면서 4번에 1번꼴로 이겼다. 100석의 상원은 임기가 6년이어서 2년마다 3분의 1 정도의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따라서 상원은 승패 못지않게 의석의 득실 여부가 승패의 기준이다. 의석이 늘더라도 과반을 못 넘길 수 있으나 차기 과반수 확보엔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상원 중간선거 19번 가운데 여당이 의석을 늘린 경우는 4번뿐이었다. 5번에 한 번만 여당이 이겼다. 작년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공화당이 2석을 늘린 경우도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선거 결과가 의미를 갖는 YS정부 이후 실시된 총선과 지방선거 가운데 실질적으로 중간평가 성격을 갖는 선거만 분석해보면 중간선거 특징이 드러난다. 우리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달라 중간선거 시점이 일정하지 않다. 대통령 임기 초에 실시되는 선거는 대선 판세가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중간선거로 보기 어렵다. 정권 출범 2년 정도는 돼야 중간평가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때, 총선 4번과 지방선거 4번 등 8번 정도가 중간선거에 해당된다. 지방선거도 지역별 이슈보다는 정권 평가의 성격이 많았다는 점에서 중간선거로 봐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8번의 ‘중간선거’ 가운데 7번은 야당이 이겼다. 여당이 승리한 경우는 MB(이명박)정권 임기 말(4년2월) 총선 때 한 번뿐이었다. 그러나 그 한번조차 여당의 온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여당은 의석수가 13석이나 줄면서 간신히 과반을 넘겼고 야당은 의석을 크게 늘린 선거였다. 이 선거의 승자는 ‘선거의 여왕 박근혜’였다는 평가들이 나왔었다. 박근혜는 MB의 행정도시 철회 정책도 무산시킨 ‘여당 내의 강한 야당’이었다. 

김-김-노-이-박 승리한 중간선거 0건, 정당 기준 1 : 7

여당이 이겼으나 현직 대통령은 끼지도 못한 선거였다는 의미여서 ‘대통령을 평가한 중간선거’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중간선거는 야당이 이기는 선거인데 ‘진짜 야당’이 시원찮으니까 ‘여당 내(가짜) 야당’이 승자가 된 선거였다. 따라서 우리나라 중간선거는 여야의 승패만을 기준으로 하면 ‘1대 7’, 대통령이 국민들의 인정을 받았는지로 따지면 ‘0대 8’이 되는 셈이다. 김-김-노-이-박 5명이 치른 8번의 중간선거에서 ‘대통령이 이긴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낙천 낙선운동으로 ‘보수 야당’이 수세에 몰렸던 16대 총선에서도 DJP연합 정권은 야당을 이기지 못했다. 여당 새천년민주당은 의석을 가장 많이 늘렸으나 연합 정당인 자민련이 크게 위축되면서 연합정권 전체 의석수는 줄었다.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의석을 늘리며 제1당을 차지했다. 8차례의 중간선거에서 여당이 의석을 늘리면서 과반은 넘긴 ‘완승’은 한 번도 없었다. 의석은 줄었으나 겨우 과반을 넘겼던 ‘선거의 여왕’의 실적이 중간선거에서 여당이 거둔 가장 성공적인 사례다. 문 대통령이 내년 선거에서 여권의 의석을 조금이라도 늘리면서 과반을 넘긴다면 ‘대통령의 중간선거 전패’ 기록을 깨는 첫 대통령이 된다.

중간선거
대통령의 중간선거 성적표

 

중간평가의 기준 시점을 취임 1년 남짓까지 낮춰 잡는다면 여권은 17대 총선(정권 출범 1년2개월)의 탄핵역풍과 작년 지방선거(1년1개월)의 대성공과 같은 결과에 기대를 걸 만하다. 17대 총선이 야당의 탄핵 자살골이었다면, 작년 지방선거는 대선 관성에다 김정은-트럼프가 펼친 평화 이벤트도 한몫한 결과였다. 여권은 내년에도 그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이벤트-가령 김정은 남한 답방- 를 기대하겠으나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고, 성사된다 해도 그만한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의 우세를 점치는 가장 큰 요인은 야당의 무능과 지리멸렬에 있다. 대통령과 집권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당이 너무 못해서 여당이 이길 것으로 보는 분석이다. 요즘 종종 쓰이는 ‘야당복’이란 말도 그런 의미다. 그러나 ‘중간선거’는 평가의 기준에서 야당 비중은 낮고 대통령과 여당의 비중이 크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여와 야의 채점 비중이 크게 다른 선거가 중간선거다. 주로 대통령의 업적과 공과에 대한 평가로 이뤄지기 때문에 야당이 받는 점수는 최종 결과에 큰 영향을 못준다. 중간선거에서 야당 승률이 훨씬 높은 이유는 야당이 잘해서가 아니고, 대통령이 제대로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0대 8’은 국민이 원하는 기록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간고사를 앞둔 수험생이다. 선배 수험생들이 줄줄이 낙제한 시험이므로 고민은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도덕 점수’ 안 좋은 건 순전히 내 탓인데 그걸 잡아낸 명감독관을 타박하며 내 맘에 맞는 다른 감독관 만들어 갈아치우겠다고 협박하는 게 시험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시험문제가 같다면 채점 방법이라도 내게 유리하게 바뀌었으면 하는 게 수험생의 욕심이다. 그러나 수험생이 공부는 못하면서 채점 방식에만 눈이 벌겋게 나대면 채점 방식은 유리하게 바꿀 수 있을지 모르나 기본 득점 자체를 그 이상 까먹을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있다는 말이 스포츠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어려운 기록일수록 누군가 도전해서 깨주기를 바란다. ‘0대 8’은 국민들이 본래 원하는 기록은 아니다. 대부분은 야당이 잘해서 만든 기록도 아니다. 대통령 자신들이 만든 기록이다. 이번엔 문재인 대통령이 도전할 차례다. 0대 9로 늘릴지 1대 8로 만들지는 알 수 없다. 과거 기록만으로 앞일을 예단할 수는 없으나 ‘0대 8’이 동전 던기지와 같은 우연한 수치가 아닌 건 분명하다. 

대통령과 여권이 이번 선거를 중간선거로 여기지 않겠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야당복’만 기대해선 안 된다는 점을 중간선거 기록은 말해준다. 야당에겐 중간선거의 승리를 ‘여당 내 야당’에 빼앗겼던 당시 한심한 야당의 처지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점을 가르쳐주고 있다. 대통령도 야당도 너무 형편없으면 제3의 세력에게 민심이 돌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키워드

#ㅅㄱ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