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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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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희
  • 승인 2019.04.19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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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린아!

이제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됐나 봐.

그토록 사랑하고 그렇게 그리워했던 당신인데. 이제 여기서 헤어져야 하나 봐.

채린아. 당신을 고향동산에 포근히 잠들게 할까도 생각했어. 또 아들과 함께 손잡고 셋이서 오르던 계룡산 자락에 뿌려줄까도 생각했어. 산새들과 산토끼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제비꽃의 향기를 맡으며 눈감을 수 있도록 할까도 생각했어.

하지만 당신이 꿈에도 그리던 대지. 그 하늘아래 당신을 뿌리기로 했어. 못다 이룬 푸른 꿈을 저 생에서라도 이루도록 말이야.

채린아.

오늘 당신을 놓아주는 것은 내게서 멀리하자는 게 아니야. 알지. 영원히 당신을 가슴에 묻고 싶어 자유를 주는 거야.

채린아 ,

훨훨 날아봐. 저 넓은 창공을 향해, 저 푸른 대지를 향해 당신의 나래를 펴봐.

사랑하는 채린아.

이제 당신은 자유의 몸이 됐어. 그토록 몸부림 쳤지만 나와 아들의 멍에에 얽매여 얼마나 괴로워했냐. 또 못난 지아비를 만나 얼마나 많은 날을 번민으로 보내야 했냐. 아들의 건강 때문에 밤잠 이루지 못한 날이 얼마였냐. 우리는 그렇게 살아 왔잖아.

 

사랑하는 채린아.

이제 그 모든 일상에서 당신을 놓아 줄게. 인연의 질긴 끈에 메여 그토록 바람 하던 공부도 뒤로하고 나와 아들만을 위해 얼굴한번 찡그리지 않았던 당신이었어. 나는 그런 모습이 자랑스러웠고 사랑스러웠어.

사랑하는 채린아.

낯선 이국 땅 그 하늘에서 당신과 헤어지지만 이것이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북풍이 부는 날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하늘에서 들을 거야. 동풍이 불면 당신의 그 싱그러운 향기를 내 가슴으로 맞을 거야. 오늘 서로 다른 모습으로 헤어지지만 머지않은 날에 우리는 함박웃음을 웃으며 만날 거야. 그날을 나는 손꼽아 기다릴 거야.

사랑하는 채린아.

당신과 잠시 헤어지지만 아들과 우리 가정의 행복을 위해 당신의 그 훈훈한 입김을 불어넣어 줘. 내 혼자서 아들을 보살피는 데는 어려움이 많을 거야. 또 당신이 잠 못이루 듯 나도 뜬눈으로 보내는 날이 많을 거야.

하지만 항상 저 푸른 하늘에서 당신이 내려다본다는 것을 믿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거야. 당신의 이름으로 맹세 하겠어, 어떠한 아픔과 어려움도 당신의 이름으로 이겨내리라고.

사랑하는 채린아.

모든 걱정과 근심을 훌훌 벗어던져. 당신에게 묻었던 인연, 그 질긴 나와의 삶도 한순간의 꿈이었다고 생각하고 훌훌 털어 버려.

그리고 저 넓은 창공을 향해 나래를 펴. 날아봐. 훨훨.......

황금빛 꿈의 나라로 당신의 깃털을 타고 날아봐.

안녕, 안녕, 안녕.....

 

움켜쥐고 있던 뼛가루를 고이 내려놓았다. 그러자 채린이 희뿌연 날갯짓을 하며 허공으로 사라져 갔다. 하얀 웃음을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내 눈에서 완전히 멀어져 갈 때까지 나는 미련에 떨고 있는 손을 창밖에서 거두지 못했다. 헬기는 채린의 모습이 날아간 뒤에도 한참동안 그곳 상공을 맴돈 뒤 방향을 돌려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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