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41]
탈북자 [141]
  • 이광희
  • 승인 2019.04.10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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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 농장지대는 그렇게 비포장도로를 따라 1시간가량 들어간 뒤에야 낡은 따차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울창한 숲과 훤하게 뚫린 잡초 지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콘크리트 잔해가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허물다만 붉은 벽돌집과 잔잔한 들풀들이 뒤엉켜 음산한 기분을 연출 했다.

야로슬라브가 차를 멈춘 곳은 포플러와 자작나무가 우거진 농장지대의 가장자리였다. 길옆으로 낡은 시골 초등학교 교실 같은 목조건물이 두어 채 늘어서 있었다. 그것은 나무기둥을 다릿발 삼아 길게 누워 있었다. 콜타르가 발린 벽체에 앙증맞게 붙은 흰색 창틀이 돋보였다. 슬레이트 지붕에는 잡초가 드문드문 돋아 있었고 깨진 유리창이 그대로 매달려있었다.

낡은 막사는 새벽 한기와 현지 상황을 전혀 모르는 답다밤이 겹쳐,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로 다가왔다.

야로슬라브는 승용차에 기대서서 연신 담배연기를 들이켰다.

나는 비포장도로에 뿌려진 세석을 툭툭 차며 담배를 빼물고 승용차 앞을 오갔다. 아무도 없었다. 이름 모를 들꽃만 새벽바람에 한들거렸다.

우리가 말없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성이고 있을 때 멀리 숲 속에서 귀에 익은 경광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숲을 가로지른 다음 곧장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군용 지프차같이 생긴 경찰차를 앞세우고 다가오고 있는 차들은 서로 꽁무니를 물고 누군가를 쫒고 있는 것 같았다.

새벽길을 덜커덩거리며 달려온 그들은 마지막 엔진소음을 토한 뒤 내 앞에서 어벌쩡하게 멈춰 섰다.

경찰차를 뒤따른 승용차에서 빅또르 김과 영사관 직원이 내렸다. 그들을 보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

차에서 내린 경찰은 야로슬라브와 눈웃음을 치며 악수를 나누었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그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 또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그 때였다. 차에서 내린 빅또르 김이 내게로 다가와 나를 불끈 끌어안았다. 그러자 늦추어진 가슴에 활줄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다가 선 기분이었다.

장 기자 어쩌지요?”

빅또르 김은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는 의도적으로 나에게 어떤 암시를 하고 있었다.

그의 눈치만으로도 무슨 심상찮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약한 경련이 나를 휘감았다.

무슨 일이요?”

나는 숨을 몰아쉬며 다그쳤다.

마음을 단단히 가져야 합니다.”

그는 내 손을 아프도록 쥐고 귀에다 속삭였다.

경찰이 이곳에서 김 선생님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있어서…….”

나는 그가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까무러칠 것 같아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늘이 샛노랗게 변했다. 호흡이 가빠오며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올랐다.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요. 어떻게?”

장 기자 정신 차리세요. 이러면 안 됩니다. 이럴 때 일수록 마음을 더욱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김 선생님이 숨진 채…….”

나는 넋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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