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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대만 용산사
[101] 대만 용산사
  • 정승열
  • 승인 2019.01.28 09: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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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사 정승열
법무사 정승열

타이베이 시내에서 MRT 5호선 판남선(板南線: 군청색) 롱산스역(龍山寺站)을 나서면, 길 건너에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자 가장 유명한 용산사(龍山寺)가 있다.

우리는 삼국시대에 중국을 통해서 불교며 유교 등을 수용하여 사상체계와 생활의 좌표를 형성하게 되었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노자(老子)의 무위자연사상에서 기원하는 전통 민족종교인 도교(道敎)가 가장 융성하다.

우리의 생활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불교는 인도에서 형성되어 후한 말 실크로드인 서역 대월지국을 거쳐 중국에 수입된 후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전파되고 2천년 동안 역대 중국 황실의 보호를 받았지만, 중국인들의 민족종교인 도교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도교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도교는 춘추전국시대 물론 유교와 불교의 요소까지 절충하여 남북조시대에 북위의 구겸지(寇謙之; 365~448)가 체계화했다. 특히 세상이 어수선했던 후한 말 장각(張角)의 태평도와 장릉(張陵)의 오두미도에서 발전한 도교는 당 시대에 황실의 보호를 받고 크게 융성했는데, 오늘날 전진교(全眞敎), 정일교(正一敎)로 분파되었다. 

그런데 우리와 달리 중국인들은 특정종교만을 절대적으로 숭상하는 사원이 아니라 도교나 불교 유교 등을 망라한 생활종교를 신앙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우리의 전통사찰이 대부분 불교사찰인 것과 달리 대만에는 유․불․도교의 중요한 신을 함께 모시는 종합 사찰이 많은데, 그러한 종합사찰의 모습을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의선당(義善堂)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몇 차례의 북경여행에서는 종교를 아편이라고 배척하는 공산주의국가였던 탓에 사찰을 찾아볼 기회가 없다가 대만에서 직접 도교 중심의 종합사찰인 용산사를 찾아간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었다. 대만인의 35%가 불교, 33%가 도교라고 한다. 

1. 타이베이 지도
1. 타이베이 지도

1-1. 화서제야시장
1-1. 화서제야시장

2. 용산사 정문
2. 용산사 정문

2-1. 본전 입구
2-1. 본전 입구

대만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임가화원을 관람하고 나온 우리가족은 MRT 5호선 푸중역(府中站)에서 시내 방향으로 4번째 정거장인 롱산쓰역(龍山寺站)에서 내렸지만, 시내에서 용산사로 가려면 MRT 4호선(中和新蘆線: 노랑색)과 5호선이 환승하는 시먼역(西門站)에서 내려도 된다.

시먼과 용산사 주변은 대만에서도 가장 일찍 도심이 형성된 지역으로서 이 일대는 청 시대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세트장 같은 보피랴오 역사거리(剝皮寮歷史區; BobPiLiao)가 재현되었으며,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뱀술 등 온갖 엽기식품을 파는 화시제 야시장(華西街夜市場), 한방차를 판매하는 약초골목 등 옛 풍경도 볼 수 있다. 

행정구역상 타이베이시 완화구(萬華區)인 용산사 일대는 맹갑(艋舺)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1700년대부터 청 상인들이 대만의 북단 단수이(淡水)에서 단수이 강을 따라 섬 내륙으로 들어와서 원주민과 교역하던 선착장을 작은 통나무배(艋)며, 긴 통나무 배(舺)들이 모인 곳이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또, 대만에는 용산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원이 많아서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완화구의 용산사를 ‘맹갑 용산사(艋舺 龍山寺)’라고 부르기도 한다(대만 단수이에 관해서는 2018.12.24. 단수이 참조).
  
 

3. 본전
3. 본전

3-1. 본전 연등
3-1. 본전 연등

용산사는 청 고종(건륭제) 4년인 1738년 본토의 푸젠 성(福建省)에서 건너온 상인들이 세웠는데, 이것은 17~18세기 동남아에서 무역거래가 활발하던 베트남의 호이안에 화교들이 뱃길의 안전과 장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며 세운 광조회관과 재물의 신 관성제군(關聖帝君: 삼국지의 관우)을 모신 것과 비슷하다(광조회관에 대하여는 2018.08.20. 베트남 호이안(1) 참조).

그러나 아무리 사찰이 현대화 되었다고는 해도 우리의 전통사찰의 일주문 같은 정문에 한자로 용산사임을 밝히는 LED 전광판이 번쩍거리는 모습은 약간 우스꽝스럽다. 용산사의 입장료는 무료인데, 전통 불교사찰은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해탈문~ 수미산으로 이어지는 가람배치 법칙이 있지만, 용산사는 이런 격식이 없다.

경내에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인공폭포가 있고 맨 앞의 본전에는 관세음보살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이 있고, 후전에는 천상성모․문창제군․ 수선존왕․주생낭낭․관성제군의 신들을 모셨다. 그밖에 사원을 빙 둘러 담장 같은 전각이 있는 등이 전체적으로 사각형 모습이고, 또, 각 전각의 벽면에는 생생한 그림을 그렸고, 지붕도 용․봉황․기린 등 상서로운 상징물을 조각하는 등 중국의 전통적인 궁중 건물양식을 모방했다.

용산사는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공습으로 크게 파괴되었다가 1957년 지금과 같이 복원되었는데, 용산사에서는 본전의 ‘관세음보살’상이 가장 유명하다. 2차 대전 당시 주민들은 용산사를 피난처로 삼고 모여들었는데, 어느 날 모기떼의 습격으로 주민들이 모기를 피해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 미 공군이 용산사를 총독부 건물로 착각하고 공습했다고 한다.

그 뒤 용산사에 온 주민들은 초토화된 용산사를 보고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용산사가 영험하다고 믿게 되었고, 특히 경내의 모든 건물이 초토화 됐는데도 본전의 관세음보살상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온전한 것을 보고 관세음보살상이 영험하다고 소문이 나면서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이 되었다고 한다.

후전에서는 수많은 신중에서 맨 오른쪽에 관우상과 유비상도 있는데, 현세구복을 추구하는 중국인들은 삼국지의 관우를 관성제군이라 하여 숭상하고 있다. 관성제군은 재물의 신으로서 상인이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시민들이 많이 찾아오고, 또 삼국지에서 의술로 유명했던 화타(华陀仙师)는 의술의 신으로서 병자들이 찾아와서 빈다. 

4. 후전
4. 후전

4-1. 후전 전경
4-1. 후전 전경

4-2. 복덕정신
4-2. 복덕정신

4-3, 천상성모
4-3, 천상성모

5. 관성제군(관운장)
5. 관성제군(관운장)

용산사는 고즈넉한 전통사찰의 모습에 익숙한 눈으로는 약간 산만해 보이지만, 시내 번화가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을 모시고 있어서 각 전각 앞에는 많은 남녀노소들이 향불을 켜고 기도하는 모습도 중국인들의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다.

또 용산사 입구에서는 입장객들에게 무료로 향을 나눠주어서 입장객은 자신이 기도하고자 하는 전각 앞에서 향을 피우고, 또 반달모양의 나뭇조각 두 개를 주는 것을 받아서 윷처럼 던져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오면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믿는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방향으로 나오더라도 반복해서 던지다가 같은 방향으로 나오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는다고 하니, 이 얼마나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뿌리박은 생활종교인지 있다.

이와 비교해서 신도들의 자발적인 성금 이외에 사찰마다 입장료를 받는 이외에 별도로 성보박물관 입장료를 받기도 하고, 또 국립공원 내에 있는 사찰들은 등산인들이 절에 들르지도 않고 등산하는데도 국립공원문화재관람료라며 고박꼬박 입장료를 챙기는 우리사찰에게는 좋은 교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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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19-01-28 10:09:44
종교 교단 측면에 비중을 두어 새롭게 종교인구 산출을 어떻게 시도해도,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http://blog.daum.net/macmaca/2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