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까지 숲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나 선배는 무릎까지 차오른 풀섶을 헤치며 걸어 나왔다.

쥐새끼 같은 놈.”

그는 연신 알아들을 수 없는 푸념을 내뱉고 있었다.

하수인을 시켜 우리의 동정을 살핀 거야. 나쁜 새끼, 속았어.”

나 선배는 혼자 말을 계속했다.

우리는 그 길로 기바리쏘워 따차지대를 뒤졌지만 채린을 찾지 못했다. 폐허가 된 따차는 물론 그곳 사람들에게 그녀가 있을만한 곳을 물었지만 그들은 모른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현지인들은 우리가 찾고 있는 채린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그들은 따차에서 고개를 삐죽이 내민 뒤 이내 고개를 내 젓고는 문을 굳게 닫았다. 그들은 우리가 마피아의 조직원이라고 생각했는지 소름 끼치듯 몸을 움츠리는 이들도 있었다.

설혹 채린이 그곳에 감금되어 있다고 해도 따차를 모조리 이를 잡듯 뒤지지 않는 한 그녀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모래톱에서 바늘을 찾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해 저문 포도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오는 차 속은 승용차의 밑바닥이 내려앉을 만큼 무거웠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의식적으로 피했다. 우리는 노곤한 피로를 느끼며 눈을 감고 있었다. 그것은 긴장다음에 몰려오는 허탈감 같은 것이었다.

나 선배는 블라디보스토크시내가 멀리 보이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나쁜 놈이야. 우리를 속인 거야. 애초부터 그는 나타날 생각이 없었어. 나타났다 해도 김 선생이 있는 곳을 가르쳐 줄 놈이 아니었어. 장 기자를 납치할 욕심을 가지고 있었을 거야.”

“...........”

내가 이럴 줄 알고 따라 나선 거야, 그런데 그놈이 눈치를 챈 거지.”

“...........”

장 기자 여기서는 어떤 놈들도 믿을 수 없어, 그놈도 한통속일거야. 다음에 호텔로 전화가 걸려올지도 몰라. 그러면 즉시 영사관으로 연락을 줘. 보통 놈이 넘는 것 같아. 그들은 장 기자를 납치할 계획을 세웠을 거야, 내 추측이 틀림이 없어.”

“..........”

 

[13] 3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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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바리쏘워를 다녀온 뒤, 늦은 아침까지 침대의 시트 속을 헤매며 뒤척였다. 어떤 꿈의 꼬리를 찾기 위해 이불 속을 뒤지는 철없는 아이처럼 시트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잊어버린 꿈의 희미한 흔적을 찾아 조각조각을 짜 맞추었다. 아내의 모습을 꿈속에서도 보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그렇게 뒤척거렸다.

나는 해가 중천에 떠오른 뒤에야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하루를 꼬박 룸 안에서 시간을 찢었다.

나는 시계의 침이 움직일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연신 시간을 찢고 있었다. 종이 조각을 찢듯이 조각조각 찢긴 시간을 허공을 향해 날려 보냈다. 그럴 때마다 숨죽은 시간이 중력을 이기지 못해 발밑에 너저분하게 흩어졌다. 온통 룸 안이 죽은 시간들의 사체로 꽉 차있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답답하게 했다.

창문을 화들짝 열고 바닷바람을 마음껏 들이켰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순식간에 내가 찢어놓은 시간의 조각들을 쓸어가 버렸다. 그제야 기분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러나 그런 감정도 잠시뿐. 돌아서면 곧이어 답답한 마음이 속을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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