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해보세요. 나를 믿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업무상 말 못할 일이 있어서......”

말 못할 사정이 뭐가 있습니까. 그렇게 곤란하시다면 그만두셔야지요.”

나는 쓴맛을 다시며 담배 연기를 들이켰다.

방 안에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나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말문을 열도록 하는 길이 그 길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하기 곤란한 부분이라…….”

그제야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무슨 이야기든 들려주지 않으면 자신의 할 일을 다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알렉세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이곳에서 신흥거부로 부상하는 인물이란 거죠. 이곳 자동차 중개상을 독점하고 있거든요. 방대한 마피아조직을 이용해 이윤이 좋은 중고자동차를 일본이나 한국, 등지에서 헐값에 수입한 뒤 이곳에서 비싸게 팔고 있어요. 중고차 시장을 독점하고 있지요. 마피아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자동차 수입업에 끼어들지 못하니까요.”

마피아들이 주로…….”

그런 셈이지요. 일본이나 한국에서 천불정도 하는 중고 자동차를 수입해서는 최소한 이천 불 내지 삼천불씩 팔고 있거든요. 말이 삼천불이지 이곳 교수나 화이트칼라 한 달 급료가 100불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돈입니까. 떼돈을 벌고 있는 거지요.”

그렇겠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자동차라고는 러시아산 트럭정도였는데 지금은 헤아릴 수 없는 승용차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자동차들이 모두 그들에 의해 수입되고 팔린 거지요. 그 뿐이 아닙니다. 이곳에 있는 유흥가들이 거의 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잖아요.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일찌감치 돈벌이에 나선 거지요.

“........”

이곳 대학생들이 장래 희망으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아세요?”

글쎄요.”

바로 마피아랍니다. 어지러울때 돈을 벌자는 거지요.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그는 마치 알렉세이의 개인 홍보요원같이 열을 올리며 그의 존재에 대해 설명했다. 내리막길을 달리는 자동차같이 자신의 얘기를 겉잡지 못한 채 말을 계속했다. 그러다 그가 우연찮게 내뱉은 말이 CIA’라는 단어였다.

? CIA?”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다 한참 만에 입을 다시 열었다. 다만 자신이 하는 말은 내 혼자만 알고 있으라는 주문을 거듭 당부하고 난 뒤였다.

알렉세이의 또 다른 모습이 있다면 미국 CIA의 현지 끄나풀이라는 거지요.”

끄나풀이라니?”

프락치. 방대한 조직원들을 이용해 이곳 정보를 그들에게 팔고 있죠. 북한 측보다 우리 측에 우호적인 것도 이 때문이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은 동북아의 안정이 세계 평화에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곳에다 CIA를 파견시켰죠. 북한의 동향감시와 중국의 활동상 그리고 러시아 동부지역을 엿보기 위해서일 겁니다. 최근 들어 CIA의 활동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그렇다면 이곳 마피아들이.......”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고 있는 셈이죠. 알렉세이가 이곳에서 마피아의 대부로 군림하고 있는 것도 이런 경제적 지원이 있기 때문이죠. CIA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계는 시쳇말로 기를 펴지 못했어요. 대부분의 주점을 중국계가 석권 했었으니까.”

“...........”

그러던 것이 CIA가 들어오면서 지각변동이 생긴 겁니다.”

그럼 알렉세이가 러시아의 첩보를 …….”

그거야 알 수 없죠. 하지만 그가 러시아정부의 기밀을 흘리지는 않을 겁니다. 러시아인들의 자존심도 대단하거든요. 그러나 북한과 중국의 정보는 철저히 보고 할 겁니다. 결국 자신들의 상권을 넓히는데도 상당한 도움을 주니까요. 악어와 악어새지요.”

“.......”

이들의 입김이 현재 연해주 정부에 막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지요. 주지사도 알렉세이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니까요.”

그렇군요. 그런데 채린은 정말 북한 측에 의해 납치됐다고 보고 있습니까?”

글쎄요. 아직은 속단하기 어려운 상태지만 거의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이는 거지요. 여러 가지 징후들이 있으니까요.”

징후라니요?”

협박조의 공문이 접수된 것이라든가 혹은 그들의 활동이 예외 없이 민감해지고 있는 것이라든가. 아무튼 현재로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나 선배가 내게 들려준 것 이상의 얘기는 없었다. 도리어 그는 나의 질문공세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품을 토하며 침대시트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피곤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길게 졸음을 토하며 벽에 붙어있던 스위치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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