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었다. 빅또르 김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그 역시 빈손이었다. 원점으로 돌아갔다. 나는 주소록을 뒤져 나홋카에 있는 박 인석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에게 나홋카의 분위기도 알아볼 겸, 또 채린에 대한 소식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였다.

하지만 박 부장은 자리에 없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출장이 의외로 길어져 다음 주쯤에야 온다는 것이 그곳 여직원의 설명이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룸으로 돌아왔다.

알리에크는 샤워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유달리 큰 배가 볼품없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나는 알렉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중국계들이 이번 일로 대단히 분노하고 있으며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들은 최근 자신들의 위상이 갈수록 퇴보하고 있어 위기감마저 느끼고 있는 마당에 그런 일이 잇따라 빚어져 더욱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조직원들끼리 채린의 납치를 놓고 대립된 의견을 보이고 있으며 더욱이 납치로 인해 자신들의 활동이 위축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조직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중국계들의 반응에 흡족해하는 목소리였다. 자신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더욱 거세게 밀어 붙이라고 부추겼다. 지금과 같은 여세를 몰아 더 큰 상처를 안겨주는 것이 채린을 빨리 찾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르게이의 충고와는 상충됐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불안감이 골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러면서도 그는 채린을 납치한 계열의 조직들이 피의 보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며칠간 몸조심을 해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전화를 끊고 소파에 등을 묻었다. 머리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따냐가 왔다.

우리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아침 겸 점심식사를 했다. 나는 입이 깔깔했지만 따냐의 잔소리를 못 이겨 오이와 토마토 그리고 약간의 훈제연어를 양상치에 싸서 먹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스푼과 나이프가 쟁반에 부딪치는 소리만 수다스럽게 들렸다.

모두 말이 없었다.

알리에크가 무겁게 눌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러시아 현지 생활의 푸성귀 같은 이야기를 하다 돌연 중국계 마피아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가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의 이야기 가운데 나를 자극한 것은 자신의 친구가 중국계 마피아들에게 납치된 뒤 살해된 부분이었다.

얼마 전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의 숲에서 끔찍하게 난자당한 사체가 발견된 적이 있었어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지요. 얼굴과 온몸이 칼자국 투성이였어요. 손가락은 잘려나갔고 눈알은 빠져버린 상태였지요. 정말 끔찍했지요. 처음에 나는 그가 내 친구란 것을 믿지 않았어요. 그를 내 친구라고 생각한 것은 손목에 그려진 문신을 보고서였지요. 그 문신이 없었다면 그가 누구의 사체인지도 몰랐을 겁니다. 칼로 복부를 얼마나 많이 찔렀는지…….”

그는 말을 잊지 못하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당시가 회상됐던지 눈자위를 붉혔다.

따냐는 애써 그런 상황을 연상하지 않으려고 고개를 내저었지만 결국에는 헛구역질을 했다. 그녀는 알리에크에게 이야기를 그만 하라고 눈치를 주었지만 그는 자신의 빈 쟁반을 내려다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들은 인간도 아닙니다. 어떤 놈들은 인육을 먹기도 한다나요. 제 친구도 신체의 일부를 찾지 못했답니다. 갈기갈기 찢어 버리거나 먹어치우거나 .......”

그는 이야기를 식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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