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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과 웃음이 넘치는 세상 만들자
해학과 웃음이 넘치는 세상 만들자
  • 나창호
  • 승인 2018.11.05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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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창호의 허튼소리]

나창호 전 충남 부여부군수(수필가).
나창호 전 충남 부여부군수(수필가).

유머는 좌중의 사람들이나, 마주한 상대방을 웃게 하는 우스개나 익살, 또는 해학이라고 할 것이다. 유머는 어색한 분위기를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꾸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곤혹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도 한다.

문득 이태 전에 경북 예천의 회룡포와 삼강주막, 문경새재를 돌아보던 가족나들이 중에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회룡포를 돌아보고 삼강주막으로 가는 도중, 용궁면 소재지에 있는 단골식당(상호이름)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유명한 식당으로 소문이 많이 났는지, 손님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겨우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 메뉴판을 보니 별미음식이라고는 할 수 없는 평범한 메뉴들이었다. 

돼지불고기, 막창순대, 매운 오징어불고기, 따로국밥 같은 것들이었다. 딸애가 선택한 매운 오징어 불고기를 안주 삼아 술 한 잔 곁들인 점심을 먹고 나오다가 길 가기 전에 미리 볼 일을 보려고 화장실에 들렀는데, 변기 앞 벽면에 쓰인 글귀가 있었다. 

“귀하가 가진 것은 장총이 아니라 단총입니다. 한걸음 앞으로 다가서십시오.”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가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나, 대중들이 많이 이용하는 큰 건물의 화장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아름다움을 위해 한걸음 다가서시기 바랍니다.”라거나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같은 점잖은 말과 달리 직설적이라 그런지 다가서는 느낌이 더 강했다. 이런 말이 익살이나 해학이 아닌가 싶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어느 날 모임에 참석 했는데, 바지앞지퍼가 열린 것을 본 어느 귀부인이 “지퍼가 열렸군요.”하고 지적했다. 이에 처칠은 천연스럽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죽은 새는 결코 새장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으니까요.”하고 대답했다. 곤혹스럽고 창피한 상황에서 유머로 빠져나온 것이다. 

처칠의 얘기를 더 해본다. 처칠이 화장실에 들렀는데 마침 노동당 당수가 볼일을 보고 있었다. 처칠은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서 볼일을 봤다. 노동당 당수가 “왜 나를 피하시오?”하고 물었다. 이에 처칠은 웃으면서 노동당은 “큰 것을 보면 국유화를 하려고 들게 아니요?”하고 반문했다. 은근히 상대당의 정책을 비꼰 것이다. 하지만 유머이기에 살벌함이 없다. 내 편은 큰 잘못이 있어도 감싸고, 상대편은 조금만 잘못해도 가혹한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화장실에서 서로 마주쳤을 때 과연 이러한 유머를 구사할 마음의 여유나 능력이 있을지 궁금하다.

영화배우 출신인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괴한으로부터 저격을 받고 총탄 제거수술을 받았는데, 그는 병실로 찾아온 부인에게 “여보, 미안해요. 날아오는 총탄을 영화에서처럼 납작 엎드려 피하는 걸 깜박하고 말았다오.”하고 말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차에 얼마나 안심이 됐겠는가. 유머는 이처럼 삶을 여유롭게,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비빔밥에 감칠맛을 더하는 한 방울 참기름 같다고나 할까?

대전역에서 인동 방향으로 가다보면 중간쯤의 원동사거리 우측 코너부근에 ‘남자 빼고 무엇이든 삽니다.’라는 재미있는 간판을 단 가게가 있다. 헌책방을 겸하고 있는데 간판 내용처럼 재미난 물건들이 많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우측에 인조해골 두 점이 걸려있는데 어찌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진짜라고 해도 속을 판이다. 이외에도 크기는 작지만 호피석을 비롯해서 불상, 도자기, 그림, 옛날 생활물건 등등, 좀 과장하면 없는 것이 없다. 

필자는 헌책을 구할 겸 가끔 들러 재미있게 구경을 하고 나오는데, 얼마 전 한참 만에 갔더니 간판에서 ‘남’자(字)의 ‘ㅁ’을 가리고 있었다. 사장께 “왜 간판 글자를 가렸느냐?”고 물으니, “세상에 별일을 다 봤다”면서 저간의 사정을 말한다. 누군가가 남자비하라면서(국민권익위원회인지, 여성가족부인지, 아니면 지자체인지 모르지만) 어딘가에 진정을 냈는데, ‘간판에 남자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통지가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아무런 탈 없이 사용하던 가게 간판을 가지고 시비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한다. 

웃기는 일이라 생각됐다. 설령 그런 진정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 것을 받아들인 정부기관인지 지자체인지 그 꼴을 또 무어란 말인가. 그냥 ‘재미있는 간판이다, 해학적이다’라고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것일까? 남자는 사지 않는다고 해서 남자비하인가? 그렇다면 남자도 사고팔려야 하나? (필자가 우매해서인지 모르지만) 이해가 안 갔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삭막해졌는지 모르겠다. 마치 오아시스 없는 사막 같은 사회가 되고만 것 같다. 웃음소리로 가득해야할 술자리에서조차 걸핏하면 큰 소리로 다투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유머를 비꼬는 말로 듣고, 익살을 얕보는 말로 듣고, 해학을 비웃는 것으로 아는 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 팍팍해지고 생활이 어려워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럴수록 해학과 웃음이 넘치는 여유 있는 세상이 돼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는 필자의 생각이므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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