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정치 톺아보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모습. 자료사진.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모습. 자료사진.

한 치졸한 국회의원이 벌려놓은 청와대의 일부 살림살이 흠집내기로 몰고 가고 싶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심야 와인바와 이자카야 카드영수증 뉴스 자체에 ‘다를 줄 알았는데 이 정권도 역시나네’라는 생각이 짙어간다.

야당의 반대가 “국민의뜻은 아니며 사과와 해명을 충분히 했다”고 교육부장관 임명을 밀어붙이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후보추천 이후 청문회 과정을 거치며 실망감이 꽤나 묵직해진 터라 ‘힘 있다고 이 정권은 더 하네’라는 생각이 깊어진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폭로로 시작된 청와대 영수증정보공개가 점입가경인 상태인 데다가 이에 더해 야당의 반대 속에 문재인 대통령의 유은혜 교육부장관 임명강행이 이어져 정국은 급냉 상태이다. 

그래도 현 정부는 걱정이 없는 눈치다. 강하게 밀어붙여도 ‘국민의 마음은 결국은 우리편’이라는 자신감이 있는 듯하다.

작년 5월 집권 후 1년 반을 돌아보면 자신감이 있을 법도 하다. 강력한 카드, 많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만병통치의 마약카드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최소한 2장은.

우선 떨떠름한 카드사용 등 도덕적 문제와 야당무시의 소위 ‘반민주적 작태’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도 이 뉴스의 뒷 장면엔 어김없이 제1야당의 국민밉상정치인 또는 죄수복을 입은 전직 대통령과 그 주변사람들이 등장한다. 

야당이 그래서 더 ‘방송장악’이라 분개하겠지만, 이런 장면을 접하면 아무리 현 정부가 실망해도 자연스레 ‘너네는 더 아니야’로 귀결된다. 첫 번째 ‘적폐’라는 마약카드를 현 정부는 손에 쥐고 있다.

올 초 비트코인논란과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단일팀 구성이슈에 이어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 친여권 성향 인사의 잇따른 성추문사건, 김경수 경남지사의 드루킹 사건이 불거지면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하락한다. 

그리고 올여름 최악의 무더위와 함께 찾아온 고용대란, 소득격차확대, 소상공인의 한숨, 부동산 우려 등 경제정책에 대한 불신은 또다시 지지율을 추락시킨다. 

그러나 두 번의 하락은 또 하나의 마약카드에 의해 모두 말끔히 봉합된다. 단박에 지지율을 상승시킨, 현 정부가 쥐고 있는 두 번째 마약카드는 ‘통일’이다. 올 초 2번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최근의 남북정상회담은 그간의 실정을 국민들로 하여금 잊게 했다. 

이 두 카드는 우리 현대사에 흔치 않은 경험이자 국가적 과제이기에 엄청난 카드임에는 분명하다. 이를 주도하는 현 정부 입장으로선 이 문제에 관한 한, 게다가 국민이 박수를 보내고 제반 상황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 두 카드에 의존해선 안된다. 이 두 카드에 대한 국민의 지지만을 믿고 정치, 경제 등 다른 현안에서 비판 세력을 무시하고 일방통행식 전횡의 길을 가선 안된다.  

지금까지 패턴대로라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백두산행 효과로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불리한 여론이 사그라들었듯, 교육부장관 임명강행이나 청와대 업무추진비 사건도 역시 다음에 예정된 마약카드의 주술로 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말이다. 우리 국민은 한두 번 맛들일 순 있겠지만 중독될 만큼 허술하지 않다. 통일에의 감성은 살아있지만 북한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높다. 적폐에 분노하지만 그 청산의 피로감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적폐와 통일로 정치, 경제 등 다른 많은 문제가 잠시 잊혀질 순 있지만 문제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순 없다. 잠복해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최근 <중앙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가 이를 말해준다. 조사결과 우리국민은 통일에 대해서 70.9%가 긍정적이나, 그럼에도 북한에의 접근은 신중해야 한다는 반응이 더 많다.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진정성에 대해선 46.1%가 신뢰한다고 했지만,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2.3%로 더 높다. 

정부의 적폐청산 지속에 대한 여론은 ‘아직 부족하니 계속 추진’(44.9%), ‘현재 적당한 수준이니 마무리’(28.9%). ‘이미 과도하니 중단’(21.4%) 순으로 나타났다. 과거의 적폐청산 지속여론이 상당히 무뎌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강영환 정치평론가
강영환 정치평론가

잠복해 있는 가장 중요한 현안인 경제 상황에 대해선 비관적 기류가 뚜렷했다. 현재 ‘경제가 어렵다’는 답변이 65.4%로 그저 그렇다(24.2%)나 좋다(9.6%)를 압도했고, 향후 경기에 대해서도 부정적 전망이 우세했다. 1년 후 경제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본 응답자는 40.1%였으나,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란 답변은 24.0%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항상 발생한다. 

민주주의국가이기에 서로 다른 시각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의견이 다르다고 무시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힘의 우위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 힘을 믿고 소수를 무시해선 안된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원인과 올라가는 원인이 가급적 일치하는 것이 더욱 안정된 사회다. 경제는 앓고 있고, 정치에 대한 불신은 높아 가는데 오직 과거청산과 통일의 기대감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형국을 조성해선 안된다. ‘상기하자 적폐세력’과 ‘함께가자 백두산’을 잘만 버무리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면 이를 버려야 한다. 

마약카드에 기대는 지지율이 되어선 안된다. 그 게임은 결국은 마약의 강도에 좌우될 수밖에 없고 국가를 병들게 만들 수 있다. 그러지 말기 바란다. 

반성할 것이 있으면 반성하며, 국민이 우려하는 잘못된 정책과 관행이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한다. 좀 더 도덕적이고, 좀 더 제대로 된 인사를 실시하며, 경제를 좀 더 단단히 챙기길 바란다. 이게 우선이다. 적폐와 통일에 너무 기대지 마라. 그리고 이젠 국민도 정부가 쥐고 있는 카드패를 읽고 있다.

*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지난 9월27~28일 만19세 이상의 남녀 1000명을 대상(전화면접 조사)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최대 ±3.1%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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