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75]
탈북자 [75]
  • 이광희
  • 승인 2018.09.03 0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관과 맞닿은 복도에서는 생활에 찌들어 짜증 부리는 중년 부인의 투박한 말소리가 들려 왔다. 둔탁한 물체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계집아이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희미하게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나는 천장 무늬가 엷게 번져 가는 것을 보며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숨어서 채린의 행동을 본 것은 작은 주점의 기둥 뒤에서였다. 그곳은 현란한 조명등이 눈을 자극했고 사면이 유리벽으로 장식돼 실제보다 서너 배는 더 커 보였다. 채린은 그곳에서 턱없이 큰 사내들의 술시중을 들었다. 입술에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가슴이 훤히 넘어다 보일 만큼 깊이 패인 옷을 걸치고 있었다. 발에는 끝이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치마는 핑크빛 팬티가 내다보일 만큼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채린은 사내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며 히죽거렸다. 예쁜 손가락 사이에 꽂힌 담배에서는 뽀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담배에서 팔목으로 이어지는 선이 적당히 꺾여 모딜리아니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녀는 연신 사내들에게 헤픈 표정을 지으며 간교를 떨었다. 그럴 때마다 사내들은 그녀의 허리에 손을 감싸며 술잔을 부딪쳤다. 천장에서는 오색의 불빛이 은가루를 뿌린 듯 반짝이며 쏟아져 내렸다.

나는 기둥 뒤에 기대서서 숨을 죽이며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를 부르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발걸음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 때 건장한 중국계 사내 네 명이 내 옆을 스치며 주점 안으로 들어왔다.

두 녀석은 등을 보여 정확히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다른 두 녀석은 얼굴을 똑똑히 보였다. 한 녀석은 얼굴에 깊게 패인 칼자국이 있었으며 다른 사내는 콧수염을 지저분하게 기르고 있었다. 그들은 우수리스크 골목길에서 만났던 그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 보다 더 큰 덩치의 러시아 사내들을 밀친 뒤 채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를 오래전부터 점찍어 놓았던 것처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져놀기 시작했다. 작은 공깃돌을 만지작거리듯이 그녀의 몸에 손때를 묻혔다. 그 모습은 손가락 사이에 동전을 올려놓고 잔재주를 부리는 싸구려 마술사와 흡사했다. 손끝으로 그녀의 턱을 밭쳐든 뒤 얼굴을 샅샅이 훑어보기도 했고 코를 킁킁대며 진한 화장기를 냄새 맡기도 했다. 얼굴을 빨아들일 것같이 가까이 들이대고 구취를 풍기기도 했다. 또 그녀의 치마 밑으로 손을 밀어 넣기도, 가슴에 입을 가져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일정한 선 이상의 반항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체념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눈을 내리 감고 담배연기만 길게 뿜어냈다. 그곳에는 삶에 대한 비애와 회의 그리고 희망에 대한 포기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고래 힘줄만큼이나 질긴 삶에 대한 한숨이 잔뜩 묻어났다.

그들 중 한 사내가 마시던 술을 채린의 깊이 패인 가슴팍에다 들이 붓고 킬킬거렸다. 물론 그녀는 가슴을 들썩이며 호들갑을 떨었고 그들에게 무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그녀의 앙칼진 행동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들에게 독설을 퍼부을 때마다 그들은 일상의 성행위에서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변태 성욕자같이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채린이 가슴팍에 엎질러진 술을 닦는 동안 그들 중 한 사내가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그는 그녀의 고개를 뒤로 젖힌 뒤 립스틱이 짙게 발린 입술을 빨았다. 채린은 더욱 신경질 적으로 입을 닦고 침을 뱉었지만 그는 미치광이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채린이 견디다 못해 암고양이같이 앙탈을 부리자 사내는 그녀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