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였다. 내 앞 10여 미터쯤 떨어진 아파트 모퉁이에서 매끈하게 생긴 동양계 사내가 불쑥 튀어 나왔다. 얼굴선이 단조로운 외모로 보아 일본인 같았다. 색이 적당하게 바랜 청재킷과 청바지를 입고, 몸은 호리호리하게 보였으며 눈썹은 먹물을 바른 것처럼 짙게 돋아 있었다. 나이는 25세 정도로 보였다. 그는 담배를 비스듬히 꼬나물고 걸어왔다. 생긴 것과는 달리 불량기가 몸에서 풍겼다. 그는 나를 보는 순간 움찔 놀라는 기색이었다. 새까맣게 박힌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리는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바지 주머니 속에 꽂혀 있던 손이 순식간에 뽑혀 올라왔다. 그는 건들거리며 내가 다가가고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 왔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어떤 불안감에 휘말린 사람처럼 담배 연기를 연신 들이키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가 내 옆을 지나는 동안 그의 눈을 뚫어지게 봤다. 그가 혹시 나를 향해 덤벼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눈동자를 돌렸다. 왠지 수상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누구야? 왜 나를 보고 움찔 놀랄까. 이곳에서 나를 알아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왜 나를 보고 눈길을 피할까.’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의 모습을 되새겼다. 어디서 한 번은 본 듯한데 어디서 보았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처음 본 것 같지는 않았다. 왠지 어느 골목의 모퉁이를 돌다 만났거나 혹은 외진 곳에서 어깨를 부딪치고 지났거나, 어떤 인연으로든 한번은 만났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내가 막 고개를 돌렸을 때 나를 힐끗 돌아본 그의 눈과 또 다시 마주쳤다. 순간 그는 나보다 더 놀라는 눈치였다. 휘둥그렇게 뜬눈과 목각인형같이 굳어 버린 어깨, 어색하게 걸어가는 걸음걸이, 조급하게 빨아들이는 담배 연기 이런 것들이 그가 놀랐다는 것을 직감케 했다.

그는 내게로 향했던 얼굴을 재빨리 돌리고 앞을 보며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

도대체 누구야.’

그 때 예리한 사선을 그으며 별똥별같이 스쳐 지나는 것이 있었다.

그에 대한 흐릿한 기억이었다.

혹시 중국계?’

순간 더욱 또렷한 기억이 칼날같이 스쳤다.

그자였다. 하바롭스크 거리의 골든 드레곤에서 본 사내. 내가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촛불을 켰을 때 나와 눈빛이 마주친 뒤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났던 사내가 확실했다. 호리호리한 몸매와 계집같이 부드러운 어깨선, 바짝 추켜올린 헤어스타일, 다소 구부정한 등, 건들대는 걸음걸이, 어둠 속에서 본 희미한 윤곽이 선명하게 다가섰다.

나는 몸을 획 돌렸다.

그는 나보다 먼저 판단을 정리한 듯 아파트 앞에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 사이를 뚫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쏜살같았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길거리에 던지고 미친 듯이 달음박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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