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는 그제야 2층 계단으로 오른 뒤 10여 분이 지난 뒤에 내려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권총과 실탄 5발이 들려 있었다. 그가 들고 나온 권총은 살상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널리 알려진 러시아제 토카레프 38구경 다연발 권총이었다.

그는 권총을 내게 넘겨주기 전에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일러주었다.

그것은 먼저 총기를 가지고 다니다 경찰이나 정보요원 등에게 적발되면 그 즉시 철창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총기를 지니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절대 비밀로 해야 하며 혹 그것을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해도 자신에게 총기를 넘겨받았다는 것을 밝히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끝으로 그는 총기를 지니고 다니다 생기는 문제는 전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나는 권총을 넘겨받은 다음 유심히 관찰했다. 권총은 잘 닳아 있었으며 총기 번호는 강한 물체에 긁혀 지워져 있었다. 묵직하게 전해져오는 총의 무게가 나를 흥분시켰다.

나는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떨며 권총을 허리춤에 꽂았다.

호텔로 돌아온 즉시 빅또르 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렉세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내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 걸까. 아니면 그녀가 있는 장소를 알아냈다는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소식이 그렇게 반가운 소식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예감이었다. 그것은 알렉세이가 반가운 소식이라면 직접 말했을 것이라는 추리에서였다. 기분이 무거웠다.

나는 쓴 담배 연기를 길게 들이켜고 몽롱한 기분을 느끼며 침대 난간에 털썩 주저앉았다.

수시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빅또르 김은 여전히 자리에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손에 땀을 쥐는 초조함이 머리를 파먹고 있었다. 그것은 개미처럼 떼를 지어 나와 내 정수리에 우글거렸다.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생각으로 가득한 내 정수리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내 생각을 하나하나 잠식했다. 그것들이 골속 깊이 묻어둔 생각을 꺼내먹을 때마다 나는 허수아비가 되어갔다.

수화기에서 들려온 공허한 소리에 귀가 멀었을 때, 이미 내 머리는 속을 파낸 수박같이 빈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괜한 피로감만 온몸에 달라붙었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권총의 무게가 나를 위로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퀭한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침대에 몸을 뉘었다. 머릿속을 지나는 바람소리만 귀를 윙윙거렸다.

내 생각들을 벌레들이 모조리 꺼내먹고 난 뒤 텅 빈 정신으로 따냐와 룸에서 점심식사를 막 끝냈을 때 빅또르 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시계가 1250분을 가리켰다.

그는 달뜬 목소리로 알렉세이를 만났느냐고 되물었다. 그리고는 내가 대답을 할 겨를도 없이 숨을 몰아쉬며 말을 내 뱉었다.

우수리스크에서 김 선생을 보았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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