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잔을 들며 엘레나 조에게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잔을 비운 뒤 그녀에게 술을 권했다. 그러자 그녀는 말없이 잔을 받아들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더 이상 자신에게 아무 것도 묻지 말아달라는 것을 무언으로 시사했다. 그녀는 단숨에 술잔을 비운 뒤 조심스럽게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독물에 젖은 것처럼 보이는 초록색의 귀걸이가 흔들렸다. 커다랗게 벌어진 눈동자는 지치고 적막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 때문에 나는 그녀가 갑자기 장님이 된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을 했다. 얼굴에 긴장과 짓눌린 표정이 신경질적으로 각인돼 있었다.

나는 말없이 술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따냐는 나의 이런 행동을 멀뚱멀뚱 넘어다 봤고, 엘레나 조는 내가 주는 술잔을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엘레나 조와 나는 순식간에 술병의 절반 정도를 비웠다.

내가 채린에 대한 얘기를 어렵게 끄집어 낸 것도 그 때쯤이었다.

나는 먼저 가슴 속에 묻고 있던 채린의 사진을 그녀 앞에 내놓았다. 그리고는 엘레나 조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또 그녀를 부른 이유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제야 따냐가 그녀에게 채린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간청을 했다. 하지만 엘레나 조는 우리 두 사람의 설명을 충분히 듣고서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언어를 상실한 사람처럼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술병이 바닥을 드러냈지만 그녀는 말문을 열지 않았다. 우리에게 조직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자신은 마피아들에게 언제 어디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무언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또 골든 드레곤을 나올 때 깡마른 사내가 자신에게 한말이 그런 내용임을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잘 길들여 진 개처럼 좀 채 입을 열지 않을 기색이었다.

나는 지갑을 뒤져 추가로 그녀에게 30불을 집어 주었다. 그 돈은 그녀가 뒷돈으로 챙길 수도 있는 것이어서 대단한 매력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그녀는 나와 하룻밤을 자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정작 자신에게 돌아가는 돈은 내가 주점에 지불한 금액의 지극히 일부에 불과했 다. 그것과 비교할 때 내가 준 30불은 완전한 공돈이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며 더듬더듬 말문을 열었다.

사실 한국 여자를 데려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엘레나 조는 말을 내뱉은 뒤 새파랗게 질리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녀는 자신이 술기운을 빌어 말했지만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사로 잡혔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말을 뱉은 이상 돌이키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곧바로 말을 다그쳤다.

언제, 어디로 데려 갔나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몰라요, 블라디보스토크는 아닌 것 같았어요. 그 외에는 아는게 없어요. 선생님.”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깨를 자잘하게 떨며 눈물을 훔쳤다. 나는 순간 머리끝까지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눈알이 퍽 하는 소리를 내며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기억할 수 있어요?”

모르겠어요. 며칠 전 가게에 온 중국계 손님 중 한 사람이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 콧수염을 기르고 꾀죄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줄담배를 피웠고 술도 별로 시키지 않고 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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