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속으로 67]

1. 피렌체 지도.
1. 피렌체 지도.

시뇨리아 광장에서 베키오 궁의 오른쪽으로 ㄷ귿자 모양의 4층 대리석 건물이 우피치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이다. 우피치란 피렌체에서 메디치가의 지위를 확고히 한 코지모 1세(Cosimo 1: 1519~1574)가 피렌체의 모든 행정관청과 메디치가의 은행 등을 자신의 관저인 베키오 궁전 옆에 집중배치 하도록 하는 이른바 ‘메디치 타운’을 조성한 결과 ‘밀집한 건물(offices)’이라는 라틴어이다. 코시모 1세의 우피치 구상을 실행한 건축가는 미켈란젤로의 제자이자 당시 최고의 건축가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이다. 바사리는 시뇨리아 광장에서 베키오 궁전 옆에 약150m에 이르는 아름답고 웅장한 도리아식 열주(列柱)가 특징인 우피치미술관 뿐만 아니라, 코지모 1세가 피렌체 시내를 흐르는 아르노강 건너 피티 궁전으로 옮겨간 이후 베키오궁전에서 피티 궁전까지 통하는 전용통로로서 베키오다리 위에 2층 행랑을 짓기도 했다(코지모 1세와 피티궁전에 대해서는 2018.05.07. 시뇨리아광장 참조).

2. 우피치 미술관.
2. 우피치 미술관.

코지모 1세는 베키오 궁전에 유럽의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많이 수집해서 더 이상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부족하자, 인접한 메디치은행 건물의 맨 위 2개 층으로 전시공간을 넓힌 것이 오늘날 우피치미술관으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우피치미술관은 메디치가의 상속녀 안나 마리아 루도비코가 피렌체 정부에 기증하여 1737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어 오늘날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과 조각 약10만여 점을 소장하여 세계 최대의 르네상스 박물관이 되었다.

2-1. 우피미술관 입구, 아르놀포 캄비오(좌) 부르넬네스키(우).
2-1. 우피미술관 입구, 아르놀포 캄비오(좌) 부르넬네스키(우).

골목 위로 연육교처럼 디귿자 형으로 지은 건물은 넓은 면이 아르노 강이 흐르는 남쪽을 향하도록 설계하여 전기가 발명되지 못했던 당시에 조명에 특별한 배려를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건물 외양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행인들이 따가운 직사광선이나 비를 피할 수 있도록 1층의 도로 쪽에는 경복궁의 근정전의 행랑처럼 길게 통로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행랑의 기둥마다 메디치가와 관련되거나 단테․ 미켈란젤로 등 피렌체가 낳은 예술가들의 흉상을 만들어 놓은 것은 메디치가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엿볼 수 있다.

2-2 미술관 행랑.
2-2 미술관 행랑.

미술관 입장료는 8유로이며, 1층은 고문서, 2층은 소묘와 판화, 3층은 회화 등 45개의 전시실에 전시하고 있는데,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람객들이 많아서 입장객을 제한하고 있다. 예약이 필수이며 국내에서도 인터넷 예약이 가능하지만, 전시물을 모두 관람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미술학도가 아니라면 미리 어떤 작품을 볼 것인지 시간과 일정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3. 다빈치.
3. 다빈치.

르네상스 3대 화가 중 하나인 레오나르드 다빈치(1452~1519)는 공증인이던 세르 피에르의 서자로 태어나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다빈치란 이름도 사실 ‘빈치(Vinci)에서 온 레오나르드’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그는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그림과 조각을 배웠다. 우피치미술관에 소장중인 베로키오가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그림 중 왼쪽 어린 천사 2명), ‘수태고지’에서 다빈치가 그린 부분인 천사, 풍경 등에서 다빈치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3-1 미켈란젤로상.
3-1 미켈란젤로상.

다빈치는 20살 되던 1472년 피렌체의 화가 길드에 가입했지만, 30살이 되던 1482년 밀라노 대공 루도비코의 초청으로 1499년 루도비코가 실각할 때까지 17년 동안 밀라노에서 그의 전속화가이자 건축 및 군사, 수력․기계 공학자로 일했다. 이 기간 동안 그린 그림은 체칠리아 갈레라니를 그린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Lady with an Ermine)을 비롯해 악사(Musician), 제단화로 그린 2점의 암굴의 성모(The Virgin of the Rocks),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 수도원의 식당에 그린 최후의 만찬(1495~97), 밀라노 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에 있는 천장 장식화(1498) 등 단 6점에 불과했다고 한다.

4. 베로키오의 그리스도의 세례.
4. 베로키오의 그리스도의 세례.

프랑스가 밀라노를 점령하자 피렌체로 돌아온 다빈치는 1503년 베키오 궁에 가로 17m× 세로 7m나 되는 ‘앙기아리 전투’의 그림을 3년 동안 그렸는데, 이 그림은 밀라노에서 그린 ‘최후의 만찬〉보다 2배나 더 컸다. 이 무렵에 그는 유명한 모나리자(Mona Lisa)도 그렸다.

1506년 다빈치는 다시 밀라노로 갔다가 60세 되던 1513년 교황이 된 메디치가 레오 10세의 형제인 줄리아노의 추천으로 로마로 갔지만, 브라만테가 성베드로 대성당을 짓고 라파엘로가 교황의 새 저택에 그림 그리는 것만 지켜보다가 낙담해서 3년 만에 되돌아왔다. 그는 피렌체 출신이지만, 밀라노에서 오래 활동하여 밀라노의 중심 스카라극장광장에 그의 동상이 있다.

미켈란젤로(1475~1564)는 13살 때부터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공방에서 그림을 배웠다. 이때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발견한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그는 메디치가의 훌륭한 소장품들을 감상하면서 조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평생 조각에 몰두하고 약간 회화․건축 등의 작품을 발표했을 뿐인데도, 르네상스의 3대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만큼 천재적인 예술가였다. 1494년 메디치가의 추천으로 로마에 가서 1498년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 피에타(Pietà)를 제작하게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4세였다(바티칸의 피에타에 관하여는 2018.03.05. 바티칸(1) 참조).

4-1. 미켈란젤로 보나르로티.
4-1. 미켈란젤로 보나르로티.

피에타 제작으로 명성이 높아진 그는 1501년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에 다비드상(David)을 제작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다비드상은 완벽한 인간을 묘사한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뇨리아광장과 미켈란젤로 언덕의 다비드상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두오모 대성당에서 도보로 약10분거리인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 그 후 교황 율리우스 6세의 명으로 1508년부터 1512년까지 4년 6개월 동안 베드로 성당의 천장에 ‘천지창조’를 그렸다.

라틴어를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가톨릭을 알기 쉽게 가르쳐주기 위한 천지창조는 문맹자에게 그림이나 조각으로 불교 교리를 설명하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사원과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의 보도부드로 사원의 벽화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들 벽화는 모두가 화산석에 조각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미켈란젤로가 그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일반인은 물론 교황의 출입까지 막고 작업에 몰두하여 온몸에 물감으로 범벅이 되어 피부병이 생기고, 장시간 고개를 젖히고 작업한 탓에 목 디스크로 목이 굳어버렸다고 한다.

4-2 보티칠리의 비너스 탄생.
4-2 보티칠리의 비너스 탄생.

미켈란젤로가 60세 때 교황 바오로 3세(1468~1549)가 성당 제단의 벽에 그림을 그리도록 하자, 그는 단테의 신곡(神曲)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을 배경 삼아 7년 동안 천국에 대한 인간의 갈망과 지옥의 공포를 그렸다. 14m에 이르는 그림은 네 부분으로서, 1부는 천사들, 2부는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12제자와 순교한 성인들이 있는 천국, 3부는 천사들의 나팔소리로 죽은 자들을 깨워서 심판받도록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장면, 4부는 지옥의 모습이다.

최후의 심판에서 미켈란젤로는 예수를 연약하지 않고 강인한 모습으로, 또 당시까지 천사의 어깨에는 날개가 달렸으나 날개 없는 천사로, 성인(聖人) 모두를 나체로 그리자 불경스럽다 하며 교황은 벌거벗은 그림에 옷을 입힐 것을 명령했으나 미켈란젤로가 거절하자 그 후 그림에 덧칠을 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미켈란젤로에 관하여는 2018.03.05. 바티칸(1) 참조).

한편, 라파엘로(1483~1520)의 아버지도 피렌체의 화가였는데, 라파엘로는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아 그림공부를 하면서 브루넬레스키, 알베르티, 상갈로 형제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라파엘로는 로마로 간 뒤 교황청의 공방에서 브라만테를 돕다가 브라만테의 사후에는 베드로 성당의 건축책임자 역할을 물려받아 활동했다. 그는 37살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르네상스 회화를 완성한 르네상스 3대 화가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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