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36]
탈북자 [36]
  • 이광희
  • 승인 2018.05.09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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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로 말하면 특수안전요원 쯤 되는 셈이지요. 이 친구 깡말랐지만 대단한 친구였어요.”

! 그래요. 아무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감사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스바시바를 연거푸 토했다.

또 한 차례 술잔이 오갔다. 나는 그들이 따르는 데로 술잔을 들이켰다.

저의 고향은 경북 상주라고 들었습니다.”

빅또르 김이 말했다.

경북 상주?”

! 상주군 사벌면. 할아버지께서는 그곳에서 농사를 짓다 일본인들의 침탈이 심해지면서 이곳으로 오셨답니다.”

그랬군요

할아버지께서는 이곳에서도 계속 농사를 지어셨다더군요. 아버지의 말씀으로는 할아버지께서 농사짓는 기술이 좋고 인심도 좋아 주변 사람들로 부터도 존경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돌아가진 아버지도 마찬가지셨지요. 당신은 늘 눈을 감기 전에 고향에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빅또르 김의 눈자위가 축축이 젖어들었다.

그는 북받쳐 오르는 한을 속으로 삼키며 말을 계속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지난 37년 소수민족 대이동 때 타슈켄트지방으로 끌려가신 뒤 그곳에서 돌아가셨고 아버지만 도망쳐 나와 이곳에서 터를 잡았지요. 제가 아주 어릴 때여서 기차 화물칸에 숨어 이곳으로 온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습니다.”

“.........”

그분들은 훌륭하신 분들이셨어요. 많은 조선인들처럼…….”

그는 늘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말투였다.

저는 김해김씨 후손 입니다. 아버지는 늘 우리가 왕손이었다는 것을 강조하셨어요.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내 성씨를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저희 할머님께서도 김해 김 씨셨습니다. 저는 늘 제 몸 속에 그분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나는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워 할머니 얘기를 흘렸다. 그러자 그의 얼굴빛이 놀랄 만큼 밝아지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형제. 우리는 형제 입니다. 같은 피가 몸에 흐르는 형제입니다.”

빅또르 김은 유달리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피가 섞여 있다는 그 한 마디에 그는 내게로 녹아들었다.

장 형은 나이가 몇이세요.”

그는 조급하게 내게 물었다.

서른일곱입니다.”

나는 마흔 하나. 내가 형입니다. 내가 형.”

그는 자신이 잃어 버렸던 동생이란 호칭을 되찾은 것처럼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불렀다. 술잔을 비운 그는 내 옆으로 다가와 유리잔을 넘겨준 뒤 굵은 몸으로 덥석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굵은 목에서 진땀이 축축하게 묻어났다. 거친 그의 호흡이 내 가슴에 다가왔다. 나도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 때부터 빅또르 김은 좀 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술좌석이 흠신 젖을 때까지 그는 내 손을 꼭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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