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34]
탈북자 [34]
  • 이광희
  • 승인 2018.05.04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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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선배는 아파트 언저리에 볼품없이 붙어 있는 단층 건물 가까이에서 차를 멈추게 했다. 그 건물은 외견상 낡은 곡식 창고처럼 쥐가 드나들고 썪은 감자가 구석에 쌓여 있을 것 같은 그런 건물이었다. 하지만 나 선배는 이곳이 빅또르 김이라는 고려인이 경영하는 음식점이라고 소개 했다. 또 이 음식점이 블라디보스토크 전체에서 손꼽을 만한 규모로, 전통 러시아 분위기를 맛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말했다. 음식을 먹으며 가무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이곳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음식점의 규모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떤 음식이 나오고 또 어떤 무희가 춤을 추는지 하는 것도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다만 빅또르 김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정보를 줄 것이며, 아내를 찾는데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관심사였다.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 선배의 뒤를 따라 음식점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겉모양과는 달리 참으로 훌륭했다. 지극히 화사했고 아늑했다. 이런 음식점이 이곳에 있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각 테이블마다 새하얀 식탁보가 반듯이 깔렸고, 그 위에는 다시 다이아몬드형의 붉은 보자기가 가지런히 덮여있었다. 공간을 일정하게 배분하고 있는 칸막이 위에는 헤아릴 수 없는 촛불 전구가 별처럼 빛났다. 천장에는 찬란한 오색의 샹들리에가 눈부셨고, 바닥에는 유리알처럼 고운 타일이 깔려 있었다.

나 선배는 그곳 여자 지배인에게 예약해 둔 자리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러자 금발의 아가씨가 다가와 한갓지고 널찍한 탁자로 우리를 안내했다.

나는 그녀가 안내해 준 식탁에 앉아서도 줄곧 빅또르 김이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또 이 사회에서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미칠까에 대해서도 되물었다. 그러면서 승용차 안에서 나 선배가 말한 빅또르 김에 대한 얘기를 떠올렸다.

그는 고려인이지만 대단히 우리에게 우호적이야. 성실한 한국인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야. 사업가로서의 기질도 있고, 사실 말이 나왔으니 얘기지만 그는 이곳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최초로 민간 사업가가 된 사람이야. 그가 운영하는 이 음식점이 이곳에서 최초로 허가받은 민간 음식점이거든. 아직까지 사회주의 법이 살아있는 판국에 순수 민간사업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거지. 이 주변에서는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사람, 또는 가장 큰 사람으로 통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나는 담배를 빼물었다.

마피아계에서도 거물이야. 치안 상태가 불안정한 이곳에서 이 정도의 사업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마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세 번째 안에 들어가는 보스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거야. 하여튼 대단한 사람이야. 만나보면 알겠지만 …….”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 선배가 나를 불렀다. 그의 옆에는 낯선 사내가 서 있었다. 그 사내는 자그마한 키에 허리둘레가 40인치는 족히 되어보였다. 붉은색 줄무늬 티셔츠는 불쑥 나온 배를 가까스로 가리고 있었지만 체구는 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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