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하나, 이야기 하나, 생각하나]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71

어린아이같이 모든 사물들과 생소하게 만났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의 조르바처럼, 나는 늘 설렘을 갖고 만나고 싶다. 설렘은 '설레다'에서 나온 말이다. '설레다'는 물이 설설 끓거나 일렁거리는 것처럼,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리는 것이다.

삶이 건조할 때는 음악을 듣거나 천천히 걸으며 몸으로 느끼는 편안한 리듬을 되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행복이란 강가의 부드러운 물결에 기분 좋게 흔들리는 배와 같다. 이 같은 기분 좋은 마음의 리듬을 '설렘'이라고 한다.

설렘이 있어야 행복하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보면 가슴이 뛰어야 한다. 이것도 '설렘'이다. 설렘도 없고, 가슴도 뛰지 않으면 늙은 것이다. 새로운 만남, 새로운 경험에 설레고 가슴이 뛰어야 젊게 사는 것이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문장 하나 72

인생, 그거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파리 뒤를 쫓으면 변소 주변이나 어슬렁거리고, 꿀벌 뒤를 쫓으면 꽃밭을 함께 거닐게 된다." (드라마, <미생>에서) 물은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지지만, 사람은 어떤 사람을 사귀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기도 한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이야기 하나 73

인간은 크게 ‘거미형’, ‘개미형’, ‘나비형’,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거미형 인간은 생산적, 창조적 노력은 하지 않고, 과거에 얻은 지식과 경험, 지위나 명성 등을 통해 먹고 사는 인간들입니다. 개미형 인간은 부지런히 먹을 것을 수집하지만 자신의 가족이나 기업 등을 유지하기에 급급해 하는 인간들입니다. 나비형 인간은 자신의 몫을 챙기지 않고, 쉬지 않고 옮겨 다니며 행복과 사랑과 생명을 전파하는 인간들입니다.

다수 애벌레는 자기가 ‘나비’가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번데기가 되는 아픔(온몸이 굳어가는 아픔)을 모면하려 그냥 애벌레로 여생을 보냅니다. 인간으로 치면, 자기의 꿈을 접고, 세상과 타협하며 적당히 살아가는 부류의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나비가 된 애벌레는 생애동안 다른 어떤 곤충보다도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게 되지요. 나비가 되어 평생 100Km 이상의 거리를 자유롭게 날고, 꽃가루를 몸에 묻혀, 각종 식물과 마무의 열매도 맺게 하는 좋은 일을 합니다.

나비가 된 그는 하늘을 날아, 숲도 보고, 호수도 보고, 강도 즐깁니다. 즉 고통의 강의 건너 성공의 강둑에 도착한 인간은 다른 사람도 건너 올 수 있도록 자기의 나룻배를 기꺼이 내놓습니다. 자신의 재능과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돕기 위해.

만일 그냥 애벌레로 남았다면, 평생 나뭇잎사귀 정도의 시야에 갇혀 살아야만 했겠지요. 출발은 같았으나 그 끝은 장대한 차이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 모두는 ‘나비’가 될 운명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세상에 부대끼며 본인의 의지부복으로 나비가 되기를 거부하고 애벌레로 남습니다.

나비가 되던, 애벌레가 되던, 인생은 옵션(option)입니다. 그러니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문장 하나 74

금산 보석사 1000년 된 은행나무
금산 보석사 1000년 된 은행나무

노거수老巨壽처럼, 사는 마지막 날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으리라.

노거수의 아름다움은 혹독한 시련의 견딤에서 나온다.

늙을수록 쇠약해지고 추해지는 것이 인생인데, 놀랍게도 나무는 늙을수록 장대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75

로봇 앞에서, 우리가 로봇이 “사람입니다”라 말하면, 로봇은 ‘사람다운 사람’과 ‘사람답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人)을 우리는 인간이라고도 한다. 인간은 인(人)자 뒤에 간(間)이 붙는다. 인간(人間)은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속에 존재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은 영원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 속에서 잠시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이 ‘간(間)’를 우리말로 하면 ‘틈’이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영원한 시간 속의 짧은 ‘틈’과 무한한 공간 속의 좁은 ‘틈’을 비집고 태어나, 사람들 ‘틈’ 속에서 잠시 머물다가 돌아가는 존재이다.

이를 우리는 ‘삼간(三間)’이라고 한다. 그러니 살면서, 그 시간의 틈을 즐겁게, 공간의 틈을 아름답게 만들다 보면, 인간 사이의 틈은 사람 냄새로 채우며 살다 가야 인간이다.

인간을 우리말로는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은 ‘살다, 삶, 사랑’과 같은 어원이라고 한다. 즐거운 시간, 아름다운 공간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인간 없는 시공간은 균형이 깨진 삼각형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을 유지할 때 좋은 말은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이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로봇 앞에서 인간이 되려면, ‘삼간’을 잘 유지해야 한다.


박한표.

박한표 인문운동가,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관광대학원 초빙교수, 프랑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전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프랑스 문화원 원장,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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