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린이 실종된 날에도 오전 11시에 강의가 들어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신발장에 들어있는 까만 아내의 구두에는 따뜻한 그녀의 온기가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쓰레기통과 옷장도 뒤졌다. 모든 것이 잘 정돈 된 그대로였다. 책상 서랍은 채린의 성격만큼이나 깔끔해 유리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어느 구석에도 낯선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허리를 낮춰 침대시트를 걷어 올렸다. 어둠침침한 침대 밑에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먼지만 뽀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내가 막 시트를 내리려는 순간 노란 담배꽁초가 눈에 뛰었다.

그 꽁초는 끝부분이 구두 굽에 짓밟혀 있었다.

나는 기민한 형사처럼 화장지를 뽑아 조심스럽게 담배꽁초를 감싸며 집어 들었다. 미국산 말보르 담배였다. 필터는 이빨에 질긍질긍 씹힌 자국이 또렷했고 침이 질펀하게 발렸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빨에 눌려 옆으로 밀린 필터에는 진한 갈색 니코틴이 배어 있었다.

왠 담배꽁초일까? 실종과 관계가 있는 걸까?”

담배꽁초를 집어든 나는 줄 곧 이런 생각을 하며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리고는 휴지에 싼 채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다시 허리를 굽혀 침대 밑을 관찰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방언저리에 놓인 냉장고를 뒤져 냉수를 들이켰다. 그제야 달아올랐던 속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가슴 속에 진 응어리는 더욱 단단하게 뭉쳤다.

그 때까지 따냐는 말 한마디도 없이 문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창밖에는 어느 새 어둠이 어슴푸레 내려앉았다. 가까이 서있던 대학 건물들도 어둠 속에서 안색을 바꾸었다. 하늘색 타일이 정교하게 붙은 기숙사 건물만이 형체를 보존할 뿐 다른 건물들은 허물허물 어둠에 녹아가고 있었다.

따냐는 충혈 된 내 눈과 마주치자 천천히 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기숙사를 나가야 할 시각이 된 모양이었다.

나는 솔직히 채린의 방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머물고 싶었다. 내가 기숙사를 벗어남과 동시에 채린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잠그고 따냐를 따라 나섰다. 어둠이 깔린 기숙사 복도는 현관으로 통하는 계단만 훤하게 밝았다. 각방의 문틈으로 약간의 불빛이 새어 나왔지만 복도를 밝히기에는 부족했다. 낡고 잘 닳은 복도 바닥이 불빛에 빛났다. 기숙사는 스산한 기운에 젖어있었다.

나는 따냐에게 양해를 구하고 같은 복도에 살고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 채린의 행적에 대해 물었다.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방마다 노크를 하고 그들이 귀찮아 할 만큼 꼼꼼하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입을 맞춘 듯 똑 같았다. 한결 같이 모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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