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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묻는 자에게만 열린다
길은 묻는 자에게만 열린다
  • 박한표
  • 승인 2018.03.06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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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하나, 이야기 하나, 생각하나]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46

이 사진을 보며, 난 8가지 '인문정신'을 지니고 싶다고 생각했다.

1. 자기 스타일로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렇게 살려면 고통을 감당하여야 한다.

나 스스로 주인으로 좌우지간 돌아야 한다. 팽이처럼, 나만의 스타일로.

2. 언어의 궁극적인 목적은 항상 침묵이고, 침묵은 실천이다.

“너 말이 많아졌구나. 예전에는 말이 많지 않았는데.‘(드라마 <신라의 달밤)>

3. 나는 곧 없어질 존재이다. 그러니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인문정신이다.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는 안 하려고 하는 것도 인문정 신이다.

4. 인문정신은 당당한 것이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사랑을 한다.”(김수영<죄와 벌>) 진짜 인문정신을 가져야 누굴 미워하고 사랑할 수도 있다.

5. 인문학의 특징은 주어가 ‘나’나 ‘너’까지이다. ‘우리’라고 쓰면 사회과학이다.

6. 인문정신은 “아파도 당당하다.”

대충 관념적으로 장난치지 말고 맞서야 한다. 그래서 인문학의 길은 아프다.

아파야 살아있는 것이다. 안 아프면 죽은 것이다. 삶은 원래 아픈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 힘든데도 버티며 사는 것이다.

삶이 그렇게 아픈 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자꾸 연어처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힘들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방향을 선택하면 강물에 휩쓸려 내려간다. 그것은 살아도 죽은 것이다.

왜? 죽은 물고기만 내려가니까. 우리에게는 두 가지 현실이 있다.

극복해야만 하는 현실, 순응해야만 하는 현실. 순응해야 하는 현실은 죽은 것이다.

7. 죽어 눈 감을 때 안식을 찾으려면 지느러미 질을 엄청스레 해야 한다.

그러면 죽을 때 편안해진다. 죽음이 안 무서워진다.

8. 천상천하유아독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문장 하나 47

모든 것은 그것 하나로 서 있지 않다. 내 곁의 것들이 건강하게 살아야 내가 살 수 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이야기 하나 48

나치의 앞잡이 이아히만, 구글에서 사진 캡처

“악의 평범성, 무사유의 죄”(한나 아렌트)는 교육문법이 잘못 되어 그렇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 무사유의 죄’라는 말을 했습니다. 요즈음 나의 뇌에서 떠나지 않는 화두이지요. 그녀의 주장은 이런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잡혀온 나치의 앞잡이 아이히만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 혹은 영혼 그자체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와 다를 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책의 부제를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로 한 것입니다. 아이히만은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데 각별히 근면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반전은 여기서 일어납니다. 그의 범죄 행위는 ‘철저한 무사유’라는 것이지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관료사회에서 주어진 규칙을 거의 어긴 일이 없는 평범한 인물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근면성과 성실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철저한 무사유’가 학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지요. 자신의 행위가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반성하지도 성찰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유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의 의견에 따르면,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무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반드시 ‘사유’해야만 했던 것을 전혀 ‘사유’하지 않았던 것이 아이히만의 죄였습니다. 맹자가 주장했던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을 바꾸어 보는 행위)’하는 기본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소통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가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최근의 우리사회에도 적용되는 내용입니다. 잠시 오늘의 우리 사회를 좀 들여다보겠습니다. 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가?

첫 번째는 우리나라의 교육이 바보들을 양산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들을 만들어 내던 교육 문법이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지배하는 정보시대로 완전 탈바꿈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교육행정가들 때문입니다. 산업시대의 교육은 윗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노동자 교육 문법일 뿐이었습니다. 이젠 경쟁의 논리를 통해, 기계와 같은 노예만을 키워서는 안 됩니다. 인간임을 자각시키는, 성취 위주가 아닌 행복을 추구하도록 하는 새로운 교육 문법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큰 학문을 가르친다는 대학도 문제입니다.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은 사라지고, 대학이 기술자 아니면 샐러리맨만 만드는 교습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의 대학이 아니지요. 인문학을 가르쳐야 합니다. 철학, 역사, 문학, 예술 같은 것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문학은 사유케 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 나라는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노예 바보’는 머리가 좋으면 다스리기 어려우니까. 생각하지 못하는 바보만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이 문제라면 책이라도 읽으면 좋으련만. 일 년에 0.9권 읽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정부가 국민을 졸로 아는 행동을 하는데도 정부가 하는 일은 언제나 옳다는 사고로 변함없는 지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와 국가를 동일시하면서 말입니다. 인문학을 정규과정에 넣어야 합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좀 더 많이 나오게 됩니다.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돈으로 계급을 나누는 인간들을 천박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서 건전한 양식을 보편화시키고 상식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지금의 한국 교육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키우고 허영을 자극하는 교육일 뿐입니다.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고, 그 공동체적 삶의 기초를 강화하는데 필요한 도덕성과 가치의 토대를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육은 실패한 교육입니다. 거기서 실패한 사회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실패한 사회는 품위, 아닌 인간의 품격 상실, 약자의 처지에 대한 동정과 공감 능력의 극단적인 위축,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흡수할 상상력의 궁핍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문장 하나 49

충남 태안

길은 묻는 자에게만 열린다.

그리고 길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50

대전 유성구 신성동에 있는 한 커피숍의 간판
대전 유성구 신성동에 있는 한 커피숍의 간판

제 3의 공간(Third Place)이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모든 사람은 쉴 수 있는 제 3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곳에서 시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은 제 3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낯설게' 대면하며, 자기만의 시간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의 공간은 1,2 공간이라 불리는 집과 직장을 제외한 공간을 말한다. (미국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

그러나 제 3의 공간은 이래야 한다.

-격식이나 서열이 없고,

-소박하고,

-수다가 있고,

-출입이 자유롭고,

-음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 곳으로 카페, 서점, 바, 헤어살롱, 각종 커뮤니티 등이 그런 곳 같다.


박한표 인문운동가

박한표 인문운동가,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관광대학원 초빙교수, 프랑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전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프랑스 문화원 원장, 와인 컨설턴트(<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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