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아무도 없는 지하 방에 던지듯이 쑤셔 박고는 밖에서 문을 잠갔다. 나는 그 방에 버려진 뒤 한동안 길게 거친 숨을 토해냈다.

방에는 낡은 책상이 구석진 곳에 놓였고 그 책상 양 옆에는 결코 앉고 싶지 않은 그런 의자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그렇다고 양쪽에 놓인 의자가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한 쪽에는 낡고 딱딱한 의자가 놓인 반면 다른 쪽에 놓인 것은 등받이가 달린 회전 의자였다. 천장에는 갓 달린 백열전등이 조용히 매달려 있었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벽에는 어떠한 장식도 치장되어 있지 않았다. 어떤 장식을 해도 찝찔한 냄새에 젖어 품격을 제대로 간직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곳이 죄수들을 심문하는 방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았다. 순간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신원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죄인 취급을 하는 러시아 특수경찰이 역겹고 불쾌했다.

총영사관에 연락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허사였다. 도어 록을 돌려봤지만 그것은 강철같이 굳게 잠겨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 내게 다가올지 모르는 막연한 불안감만 가슴 언저리를 맴돌았다. 눅눅한 냄새에 숨이 턱턱 걸렸다.

나는 불결한 지하실 바닥을 오가다 방 한편에 마련된 작은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곳에서는 찝찔하고 습한 바람이 솟아올랐다. 어둠속에서는 연신 찍찍거리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렸고, 그 소리는 소름이 끼칠 만큼 깊이 귀속을 파고들었다. 급히 문을 닫았다.

나는 그렇게 낯선 방에서 줄잡아 30분은 족히 갇혀있었다. 숨 막히는 답답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이들이 당장 보내 주지 않는다면 끓어오른 분노를 삭이지 못해 질식사 할 것 같았다. 심장이 조여 왔다.

그 때였다. 문 밖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이어 우둔하게 잠긴 문이 열렸다. 그곳에는 콧수염을 기른 사내와 나를 이곳으로 끌고 왔던 사내가 버티고 서 있었다. 노란 콧수염을 기른 사내는 쌀쌀맞아 보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눈두덩이 부풀어 오른 모습이 고집불통 같아 보였다. 큰 코와 두툼한 입술, 밑으로 쳐진 볼이 투박스러웠다. 그는 검은 가죽잠바를 벗어 제치고 등받이가 달린 의자에 앉았다.

손님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 한데. 그 쪽에 좀 앉으실까?”

그는 빈정거리며 내게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그의 말은 권유였지만 말투는 명령에 가까웠다. 그는 내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이빨을 드러내고 야릇한 웃음을 내 보였다. 그 웃음은 소름 끼칠 만큼 기분 나쁜 것이었다. 자신의 앞에서는 어떤 비밀이라도 털어놓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한다는 심문관 특유의 인상이 비어져 나왔다. 이 분야에서는 자신이 전문가라는 그런 자부심 같은 것 이었다. 또 거짓 없이 순순히 자백하는 것이 신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은연중에 경고했다. 자신을 러시아 특수경찰 소속 이반 곤예프반장 이라고 소개한 그는 곧이어 말문을 열었다.

가지고 있는 소지품을 몽땅 책상 위에 올려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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