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 9 ]
탈북자 [ 9 ]
  • 이광희
  • 승인 2018.02.12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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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들아. 할 테면 해봐.”

그는 여종업원의 정수리에 총구를 바싹 들이대고 길게 숨을 들이켰다. 잔인한 눈빛이 그녀의 볼을 핥았다.

종업원의 흑갈색 눈빛이 순식간에 탁한 빛으로 변하며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이빨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내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그녀는 몸서리치도록 예민하게 만져지는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을 서서히 덮쳐오고 있다는 절박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종업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창백한 얼굴로 그의 눈빛을 주시했다.

레스토랑의 유리창이 멀리서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작전수행을 위해 의도적으로 깨고 있었다. 요란한 소리가 홀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포위망이 긴박하게 좁혀지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출입문이 안쪽으로 살짝 밀렸다. 그 사이로 총구가 삐죽이 나왔다.

, 이 개새끼들아 똑똑히 봐.”

그는 자신의 윗옷에 숨기고 있던 이발용 면도기를 꺼내 들었다. 시퍼런 면도날이 햇살을 받아 번뜩였다.

한 손에 면도날을 다른 손에는 권총을 들고 종업원의 목을 조였다. 면도날이 종업원의 인후부 중간 지점에 정확히 가로 놓였다.

여종업원은 자신의 목에 종이같이 날카로운 면도날이 감지되자 턱을 치켜들고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순간 레스토랑 문 밖에서 또 한 차례 메가폰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그의 눈빛이 광체를 발함과 동시에 손에 들려졌던 시퍼런 면도날이 여종업원의 인후 부를 가로 자르며 빗겨 쳤다. 팽팽하게 당겨진 종이를 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참고 있던 울분 같은 생피가 그의 와이셔츠 옷깃을 스치며 치솟았다.

울대가 잘린 종업원은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감쌌지만 선혈이 그녀의 손을 뚫고 분수같이 솟구쳤다. 푸줏간에서 닭의 생목을 잘라 버린 모습이었다. 연신 붉은 피가 레스토랑 벽에 흩뿌려졌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저질러진 일이었다.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사내는 곧이어 머리를 쳐들고 피를 토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던 그녀의 관자놀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예리한 총성과 함께 검붉은 골수가 머리 위로 비산됐다. 그녀는 나무토막같이 힘없이 꼬꾸라졌다. 찢어지는 외마디 비명이 고막에 상처를 남기며 메아리 쳤다. 순식간에 피비린내가 홀 안에 물안개처럼 피어올랐다. 햇살에 아름답게 빛났던 그녀의 머리칼은 순식간에 핏빛으로 변했고 우윳빛 피부는 주검의 그림자에 그을려 퇴색 되었다. 멀뚱멀뚱 뜬 두 눈은 바닥을 뚫어지게 드려다 보며 세상을 원망하고 있었다. 다른 종업원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벽 한쪽에 굳어버린 석고처럼 엉거주춤 서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대로 지켜볼 수 없었다.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자 생활을 하며 내가 보아온 범죄꾼들은 자신들이 잡고 있던 인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해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유리조각같이 날카로운 칼날을 인질들의 목에 들이대고 발악을 했지만 결국 불문율처럼 인질을 풀어주었다. 인질을 자신의 신변 보호수단으로 활용했지만 희생의 대상이나 기분풀이의 대상으로 생각지는 않았다. 최소한 그 정도의 양심과 도덕성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내가 본 그런 인질사건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저급하고 비열하며 도저히 인간으로 취급될 수 없는 그런 자가 광적으로 저지른 범죄였다. 치가 떨려 오금을 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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