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규교수의 과학으로 읽는 한의학]

 손창규 대전대 한의학과 교수.

성인의 입에서부터 항문가지 연결된 소화관의 길이는 약 9미터 정도이다. 우리가 수시로 먹은 음식과 약 1리터 이상의 물 및 분비되는 소화액들을 적절한 속도로 항문 쪽으로 전달되어 나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음식물들이 섞이고 소화흡수가 되며 나머지는 적절하게 체외로 배출된다. 이러한 소화관의 운동은 입에서 항문 쪽으로 파동처럼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연동운동이 가장 중요하다. 소화관운동은 우리가 인식하는 뇌가 인지한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고, 감정이나 신체적인 컨디션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에 의하여 조절된다. 

소화불량이나 복통 속쓰림 매스꺼움 구역감 구토 변비 설사 등과 같은 증상들은 직간접적으로 위장관운동이상과 상관성이 깊다. 역류성식도염, 기능성소화불량 및 과민성대장증후군과 같은 기능성 질환들은 대표적으로 위장관 운동의 이상이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예로, 물리적으로 작용하는 위장관의 연동운동이 약해지면 화학적 물질인 위산이 더 많이 나와서 식도염이나 위염 등의 원인이 되며 반대로 급하고 격한 장운동의 항진은 복통과 설사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치료법도 위장관 운동을 조절하는 약물은 중요한 선택사항이다. 이러한 위장관 운동의 조절은 한방치료의 약물이나 침치료의 중요한 작용기전으로 알려져 왔다. 필자의 연구팀은 위장관 질환에 대한 침치료의 과학적 작용기전이 위장관운동의 조절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임상시험을 통해서 밝힌 바가 있다.  
 
침치료의 혈자리 중에서 손발의 첫째와 둘째 손발가락의 겹치는 부위에 있는 “합곡”과 “태충”이라는 혈자리는 양측의 4개의 혈자리를 합하여 '사관 (四關)'이라 부른다. 사관이란 몸의 기가 소통하는 4개의 관문이라는 뜻으로, 일반인들에게 간혹 소화불량이나 복통, 두통에 효과가 있는 지압점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본 연구자들은 20명의 시험참가자들을 2 그룹으로 나뉘어 한 그룹은 사관혈에 진짜 침을 시술받고 다른 그룹은 사관혈 주변 부위에 거짓 침을 시술받았다. 침치료 전에 20개의 미세한 구슬이 들어있는 캡슐을 복용하고 침치료 후 0 6 12 24 48시간 뒤에 복부 X-선 사진을 촬영하여 소장, 상행결장, 횡행결장, 하행결장, 직장 및 체외로 배출된 구슬의 개수를 계산하여 위장관운동의 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하였다. 

본 시험은 위장관 운동이 정상적인 경우 병적으로 저하되어 있는 상태 및 항진되어 있을 상태에 맞추어 각각 3년간 연속적인 시험을 수행하였다. 실험결과 흥미롭게도 사관혈의 침치료는 위장관운동이 억제되어 있을 때는 촉진시키는 반면, 과도하게 흥분되어 있는 위장관운동은 억제하여 정상화 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위장관 운동이 정상인 경우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본 시험은 개인의 위장관운동의 습관적 차이에 의한 오류를 없애기 위하여 교차시험 (모든 참여자가 한번은 진짜 침을 맞는 실험을 하고, 다음에는 거짓침을 맞는 설계를 말함)의 방법을 적용하였다. 

사관혈.
사관혈.

이러한 임상시험의 결과는 침치료의 원리를 설명해주는 흥미로운 발견으로서, 3편의  SCI급 국제저널에 실렸다. 질병이란 기본적으로 균형이 깨어져서 생기는 것이며, 균형을 맞추는 것을 가장 중시하는 한의학적 치료법의 작용원리를 과학적으로 밝혀주는 사실들인데, 최근 현대의학에서도 질병을 이렇게 불균형과 균형의 개념으로 보는 새로운 지식들이 넘쳐나고 있다. 참고로, 사관혈은 소화불량이나 복통 뿐만이 아니라 생리불순, 생리통, 고혈압, 저혈압, 전신통증, 가습답답, 자율신경실조증 및 전신의 피로 등, 기혈이나 내분비호르몬 혹은 소화계의 소통이 안 되어 발생하는 다양한 질병에 가장 많이 응용하는 혈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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