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147>

얼마 전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가진 대전고 동문들 사이에서 "국제고로 전환됐으면 어쩔 뻔 했느냐"는 말들이 나왔다고 한다. 대전의 대표 명문 대전고의 국제고 전환 문제를 놓고 지난 2015년 교육계는 물론 주민, 동문들 간 첨예한 대립을 빚었다. 결국 대전시의회가 '공유재산관리계획 동의안'을 부결시켜 무산된 국제고는 옛 유성중 부지에 국제중고를 함께 설립하는 안으로 변경됐지만 이마저도 지난 4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가 재검토 결정을 내렸다.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국제고 설립을 두고 전환설립, 병설, 분리설립 등 수차례 계획변경을 거쳤지만 번번이 무산의 아픔을 겪은 대전시교육청은 중투위 통과를 자신했었다. 교육청은 갑자기 치러진 대선에서 후보들이 특목고 폐지공약을 내놓자 교육부가 정치적 부담을 느껴 재검토 결정을 한 것으로 봤다. 새 대통령에 따라 국제고의 불씨가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 대전국제고 설립은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 지명으로 대전국제고 추진 더 어려울 듯

여기다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신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지명되자 대전국제고는 완전히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분석들이다. 국제고 신설은 고사하고 제주교육청은 제주외국어고등학교를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고교체제개편을 서두르고 있다. 광주교육청은 문 대통령의 교육공약을 분석해 핵심과제를 도출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전담부서를 운영할 정도로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김 후보자는 대표적인 진보교육계 인사다. 민선 1, 2기 경기도교육감을 지낸 김 후보자는 무상급식과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등 진보적 교육정책을 추진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문재인 캠프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대부분의 교육공약이 그의 손을 거쳐 일찌감치 새 정부의 교육수장으로 거론돼 왔다. 그런 만큼 문 대통령 대선공약의 상당수가 교육정책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커졌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가장 민감한 대입제도부터 변화가 예상되는데 현재 중학교 3학년이 대입을 치르는 2021학년도 입시부터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과 대입 전형 단순화 등이 현실화 되고 있다. 입시 예비고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특목고와 자사고에 대한 일반고로의 전환도 예상된다. 그가 교육감 재직 때부터 강조해온 '교육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보편적 교육복지와 교육혁신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전지역 교사들이 5월 31일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대전국제고 설립·학생인권조례 무산 등 대전교육청 속내 복잡

인사청문회 과정이 남긴 했지만 국제고 설립 추진을 비롯해 학생인권조례 무산, 전교조 합법화와 전임 허가 문제 등에서 새 교육부 장관과 정책방향이 다른 대전교육청은 속내가 복잡해 보인다. 이미 있는 특목고도 일반고로 전환될 처지니 국제고를 설립하는 계획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 중투위가 내년 초 착공예정인 대전국제고에 재검토 결정을 내린 것도 이 같은 정치적 여건변화를 반영한 결과일 것 같다.

반대로 대전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두 차례 심의가 유보된 대전학생인권조례안은 재추진될 가능성이 커졌다. 학생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자는 의미에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는 두발과 복장 규제를 완화하고 체벌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김 후보자가 경기교육감 재직 때 전국에서 처음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선포했다. 그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폭력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라는 교육부의 지침을 인권침해라며 거부하기도 했었다.

김 후보자가 교육부 장관이 되면 이미 시행되고 있는 서울, 경기, 전남, 광주 이외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교권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대전에서도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학생인권조례의 재상정을 주장하고 있어 보수성향의 교총과 대립 우려도 있다. 벌써부터 교총은 김 후보자의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추진 등이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 철저히 분석하고 대응해야

김 후보자의 교육철학은 설동호 대전교육감과 전교조 간 대립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도'를 자처하는 설 교육감은 그동안 교육부에 순응하는 보수 쪽 교육정책을 펴 왔다. 국제중고 설립 백지화를 비롯해 노조전임 불인정, 학생인권조례, 자사고 재지정 등과 관련해서는 전교조와 건건이 대립해왔다. 지역의 시민사회단체까지 나서 "설 교육감은 전교조에 대한 탄압을 멈추라"고 했을 정도다.

설 교육감 말처럼 대전학생을 잘 길러내는 데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김 후보자가 교육부 지침을 거부했듯 설 교육감도 소신행정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은 정부정책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전교육청은 새 정부의 교육정책을 철저히 분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대전국제중고와 학생인권조례, 전교조와의 관계 회복도 여기 해당된다. 정체된 대전교육에도 변화가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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