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23>
독일여행을 앞둔 여행객이라면 한 번쯤 독일민요 ‘로렐라이(Die Lorelei)’를 떠올리며, 로렐라이 언덕을 거닐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로렐라이 언덕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서쪽으로 약85㎞ 떨어져 있는 라인 강 유역의 작은 마을 뤼데스하임(Rudesheim Am Rhein)에 있다. 북유럽에서 교통의 중심지 프랑크푸르트에서 약180㎞ 떨어진 쾰른(Köln, Cologne)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으로 도시의 80~90%가 폐허가 되었던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그 중간지점에 있는 것이다.
라인 강의 강폭은 낙동강과 엇비슷하지만, 수량(水量)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수많은 화물선과 여객선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리는 것을 바라보면 독일에서 얼마나 중요한 교통로가 되고 있는지를 잘 알게 된다. 강둑에는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변에 세운 이정표보다 3~4배는 더 큰 표지판이 군데군데 세워진 것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이것은 육로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중세부터 주요 교통로인 라인 강 뱃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스위스 발원지로부터의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라고 했다.
라인 강 건너편 강둑에 세워진 ‘555㎞’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버스에서 내린 뒤, ‘로렐라이 언덕’으로 올라갔다. 해발 193m에 있는 로렐라이 언덕이 있는 바위를 ‘요정의 바위’라고도 하는데, 그다지 이상하지도 않은 평범한 바위덩이가 아름다운 전설을 만들어낸 현장이다. 바위에 붙여둔 동판 표지는 이곳이 해발 193.14m이고, 라인 강에서 125m 떨어진 지점임을 밝히고 있는데, 언덕이라고 하기엔 약간 높고 산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은 로렐라이 언덕에서는 라인 강 물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바위산 아래로는 라인 강과 프랑크푸르트에서 퀼른으로 통하는 열차가 다니는 철도의 터널이다.
아마도 이곳에서 두 강물이 합쳐지면서 큰 격랑이 생길 때, 작은 배들이 자주 난파되는 것을 로렐라이 마녀의 노래 때문이라는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싶은데, 실제로 이곳은 배를 운행하기가 까다로운 곳으로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강폭이 갑자기 좁아지면서 소용돌이 치는 곳이라고 했다. 이렇게 실체가 없는 로렐라이의 여인을 만나러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다시금 긴 강둑을 걸어서 검정 대리석으로 만든 보잘 것 없는 여인상을 보러 달려왔다고 생각하니, 마치 사기꾼에게 속은 것 같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벨기에의 ‘오줌싸개 어린이 동상’,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상’과 함께 로렐라이 언덕의 ‘마녀 상’을 ‘세계 3대 사기’라고도 말하지만, 이것은 그만큼 세계인의 마음을 감동시킨 작가들의 영향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의 산하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전설들이 전해오고 있지만, 이것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가까운 일본은 이미 여러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단 한명의 노벨상 수상 작가를 배출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로렐라이가 있는 마을 뤼데스하임의 레스토랑이나 기념품가게 등은 온통 로렐라이를 밑천삼아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업하고 있는데, 강변의 한 조그만 음식점에 들어가서 다시 한 번 놀랐다. 음식점 안의 하얀 벽에 마치 어린이들의 키를 표시해 놓은 것처럼 검정 매직펜으로 줄을 그어놓고, 그 옆에 2001. 2000. 혹은 1985 등의 숫자가 표시되어 있는 것이 궁금해서 물어보니, 그것은 강물이 범람하여 가장 높이 침수된 연도를 표시한 것이라고 했다. 매년 이런 수해를 겪으면서도 음식점을 옮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기념하면서 장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끈질긴 게르만 민족의 특성과 로렐라이 언덕과 같은 전설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저력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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